항목 ID | GC009025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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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家屋 |
영어음역 | Kim Inhwa Gaok |
영어의미역 | House of Kim Inhwa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정연학 |
성격 | 전통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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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930년대 |
정면칸수 | 4칸 |
측면칸수 | 4칸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
소유자 | 김인화 |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전통 가옥.
[개설]
김인화 가옥은 사랑채를 배치하고 행랑채까지 둔 집으로 박곡리에서는 가장 큰 집 가운데 하나이다. 집의 상량문에 병자년(丙子年)이라 쓴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때인 1936년에 지은 집이다. 이즈음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민족 전체가 수난을 겪던 시기로서, 당시에 농촌에서 이 정도 큰 규모의 집을 지은 것으로 미루어 집주인이 웬만큼 부를 축적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건축 부재나 기법은 대체로 빈약한 편이다.
[위치]
박곡리로 들어가는 입구의 네거리 서쪽 모서리에 자리한 집이다.
[형태]
칸살이는 몸채가 4칸 전퇴, 날개채가 4칸 전후퇴로 구성되었다. 날개채가 더 크고 사랑채와 나란히 배치된 점은 특이하다. 그러나 이렇게 배치하면 동향집에서 대청이 남향으로 놓이게 되고, 건넌방이 사랑방과 가까이 있게 되는 장점을 갖는다. 건넌방은 단칸방이고 대청은 2칸 반이다. 안방은 2칸이며 뒷퇴를 개방하고 있는데 아마도 예전에는 골방이 시설되었을 만한 장소이다.
부엌은 전후퇴를 함께 쓰는 한 칸이며, 부엌 아래에 아랫방이 만들어진 점이 특이하다. 아마도 예전의 광을 개조하여 구들을 들인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대청이 2칸으로 크고 아랫광이 원래부터 한 칸으로 크게 설정되는 것이 여타 민가와 다른 큰 규모의 집이라고 하겠다. 구조는 1고주 5량, 긴보 5량 집이며 3분법을 쓰고 있다. 사랑채는 5칸 일자형 전퇴집으로 안채 건너편에 붙어 ㄷ자로 들어서 있다. 칸잡이는 복판에 대문간을 설정하고, 북쪽인 왼쪽에는 사랑방을 두고, 아래쪽에는 창고를 놓았다.
사랑방은 아래 웃방을 각방으로 만들며 각각 앞뒤로 문을 설치하였다. 사랑방 앞퇴에는 툇마루가 시설되어 얼굴을 행랑마당으로 향하며, 아궁이는 대문간 쪽에 시설되었다. 창고는 대문간 쪽에서 출입하도록 계획된 것과 안마당에서 출입하도록 시설된 것이 있는데, 아마도 대문간 쪽은 원래 외양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아래쪽은 행랑마당에서 출입했던 헛간이 아닐까 추정한다. 지금은 미서기문이 설치되어 있다.
아래채는 안채의 부엌 아래쪽에 배치되어 있는 3칸 맞걸이집이다. 아마도 앞쪽 한 칸은 광이고 복판은 뒷간인 듯싶다. 뒤쪽으로는 전면이 개방된 헛간이 설정되었다. 지붕은 골함석집인데 벽체는 여북하다. 행랑채는 일자형 5칸 맞걸이집이다. 모두 헛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행랑마당으로 개방되어 있다. 뒤안 서쪽 모퉁이에 장독대가 있고, 안마당의 동남쪽 구석에 조그만 화단이 있다.
[현황]
전형적인 ‘므’자 배치로서 3층 동택에 해당하는데, 다만 사랑채를 ‘ㄱ’자로 꺾지 않고 안마당 남쪽을 비워 둔 대신 아래채를 안채 모서리에 배치하고 있다. 아마도 비좁은 안마당에 햇볕을 받기 위한 배려인 듯도 한데, 개화의 정신이 스며든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뒤로 곱은자 안채가 있고, 그 앞에 일자형 사랑채와 역시 일자형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 아래쪽으로 별도의 헛간이 배치되어 있다.
지금은 안마당 서쪽의 담으로 대문을 개설해서 출입하지만 원래는 행랑채 쪽에서 사랑채를 거쳐 드나들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처음 집을 지을 때는 마을 초입 네거리 서쪽 골목에서 동으로 진입하는 동사택으로 계획된 듯하나, 지금은 샛길에서 대문을 두고 있다. 동사택이니 서사택이니 하는 전통적 관념보다 당장의 기능을 중시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