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712 |
---|---|
한자 | 育兒儀禮 |
영어음역 | Yuga Uirye |
영어의미역 | Ceremonies for Upbringing Children |
이칭/별칭 | 성장의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집필자 | 김시덕 |
[정의]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아이가 태어나서 만 한 살이 될 때까지 치르는 모든 의례.
[개설]
성장의례(成長儀禮)라고도 하는 육아의례(育兒儀禮)는 출산 후부터 이루어지는 수유, 목욕, 첫 외출, 작명, 백일, 돌 등의 의례를 말한다. 이러한 의례는 아이의 안전과 외부로부터의 감염을 막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삼칠일·백일·돌을 들 수 있다. 육아와 관련한 의례가 언제부터 행해졌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으나, 생명을 존귀하게 여겼던 조상들이 갓 태어난 아기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정성과 신념으로써 보살피고 축원해 온 것이 육아의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삼칠일]
아이가 태어난 후 매 7일마다 세 번 행하는 의례를 삼칠일이라고 하며, 처음 7일을 첫이레라고 한다. 이때는 산후 금기를 그대로 지키고 첫이레가 되면 삼신상을 차려 삼신에게 감사하고, 아기의 무병장수를 빈다. 이날 비로소 아기의 강보를 벗기고 깃이 없는 옷을 입히며, 소매끝도 풀어 준다. 이날은 집안 어른, 곧 할아버지에게 아이를 처음 보이는 날이기도 하다.
두이레도 삼신상을 차리지만 요즘은 생략하는 집도 많다. 이날 아이에게 깃이 달린 두렁이를 입히고 소매끝도 풀어주어 아이가 마음대로 활개를 칠 수 있게 해준다. 세이레는 삼칠일을 마치는 의례이기 때문에 삼신상을 차려 마지막 감사를 드리고, 금줄을 거둔다.
이날은 특히 이웃과 친지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수수팥떡을 해서 대문간에 내놓아 잡귀의 범접을 막는다. 사람들은 실타래나 옷을 선물하는데, 첫아기인 경우 외가에서 옷과 포대기·띠·미역·실 등을 가져와서 아이와 첫 대면을 한다.
이날은 또 아이의 아명(兒名)을 지어주는데, 처인구 마평동과 남사면 완장리, 양지면 식금리, 백암면 용천리, 원삼면 미평리, 기흥구 서천동에서는 잡귀가 붙지 말고 오래 살라는 의미로 돼지나 개똥이, 돌쇠, 바위, 꺾쇠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아기의 손톱과 발톱은 세 이레나 백일이 지나서 깎았다. 서천동과 완장리, 마평동, 죽전동, 식금리, 용천리, 미평리 등에서는 가위나 손톱깎기 같은 쇠붙이로 깎으면 아이에게 해롭고 커서 손버릇도 나빠진다고 여겨서 산모가 자신의 이로 짧게 다듬어 주었다.
이즈음 아이에게 병이 나면 죽전동에서는 삼신할머니에게 빌거나 무당집에 다니며 방지를 하였다. 김량장동에서는 아이가 경기를 하면 문풍지를 떼어서 물에 타먹였고, 감기에 걸리면 아궁이재를 먹이기도 하였다. 식금리와 완장리, 용천리에서는 부정이 들어서 병이 생겼다고 여기면 팥단지를 아이의 나이수대로 만들어서 뿌렸다.
[백일]
백일은 아이가 태어난 지 만 백 일이 되는 날을 기념하여 베푸는 잔치이다. 백일이라는 의미는 큰 수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때까지 무사히 자란 것을 대견하게 여겨 잔치를 벌여 축하했던 것이다.
백일 아침이 되면 삼신상을 차리고 아이의 수명과 복을 빈 후 음식은 산모가 먹는다. 이날 아이에게는 색깔 있는 옷을 입히거나 백 개의 천조각으로 만든 옷을 입혀 장수를 기원하기도 한다. 또한 마을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와 함께 아이를 보이기도 하였다.
백일의 경우 마을에 따라 상차림이 달라지는데, 식금리와 마평동에서는 밥과 미역국만 차려놓고 삼신에게 비는 반면, 죽전동에서는 밥그릇에 쌀을 담아 수저를 꽂고 여기에 실을 매어 두기도 한다. 이때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백설기와 수수팥떡을 하여 백 집에 돌리는 풍속이 있다. 이는 복을 그만큼 많이 받아 무병장수하라는 의미가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백일이 된 아이에게 수수떡이나 백설기, 송편 등을 먹이기도 한다.
마평동과 완장리, 식금리, 김량장동, 서천동, 용천리, 미평리에서는 백일과 돌 때 아이에게 수수떡·백설기·송편을 먹인다. 송편은 알이 꼭꼭 차서 부자가 되라는 의미이고, 백설기는 깨끗하고 장수하고, 수수떡은 살을 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죽전동에서는 백설기는 하얗게 소담스럽고, 수수팥떡은 살을 풀고, 송편은 살결이 고와지라는 의미로 먹인다.
또한 수수떡의 경우에는 백일이나 돌에만 먹이지 않아서, 서천동과 완장리·마평동에서는 만 세 살이 될 때까지 먹이고, 용천리에서는 열 살 생일 때까지 먹이기도 한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자란 머리를 용인 지역에서는 ‘빼내머리’라고 한다. 이 머리는 백일이나 돌 무렵에 가위로 깎는데, 오래 살라는 의미로 모두 깎지 않고 서너 가닥 남기기도 한다. 이때 깎은 머리카락은 아궁이에서 태운다.
[돌]
아이가 태어난 지 만 일 년이 되는 날을 돌이라고 한다. 이날은 아이가 처음 맞이하는 생일이기도 하여 큰 상을 차려 축하하였다. 오늘날에는 아이를 적게 낳아서 돌잔치가 더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다.
돌잡이의 복장은 아들은 보라색이나 회색 바지에 분홍, 또는 색동저고리를 입히고 타래버선을 신긴 뒤 그 위에 색동 두루마기와 남색 조끼, 색동 마고자 차림을 하고 전복에 홍실을 두른 후 복건을 씌운다. 그런 다음 주머니를 찬다. 딸에게는 색동 저고리에 붉은색 긴치마를 입힌 뒤 조바위를 씌우고, 역시 타래버선에 주머니 차림을 한다.
주머니에는 붉은실로 ‘수(壽)·복(福)·귀(貴)’ 세 글자를 수놓고, 국화나 모란 등을 수놓는다. 주머니끈에는 작은 타래버선과 은도끼·은나비·은자물통 등을 달아주었는데, 이는 잡귀 퇴치와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함이었다. 돌띠를 허리에 한 번 감아서 매는 것 역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돌상에는 쌀밥·미역국·푸른 나물·백설기·수수경단·송편·생실과·구이·자반 등을 차리고, 쌀·국수·대추·흰색 타래실·청홍색 타래실 등과 돌잡이를 할 물건들은 상 위에 차려 놓는다.
돌상에 빠지지 않는 것이 돈인데, 이는 부자로 살기를 바라서이다. 책은 원래 천자문을 놓았다가 아기가 자란 다음 읽게 하였다. 학문을 익히거나 재주가 많으라는 뜻으로 붓과 먹·벼루를 놓았고, 아들인 경우 무운과 용맹의 상징으로 활과 화살을 놓았으며, 딸인 경우 바느질 솜씨를 으뜸으로 여기어 색지와 자·실 등을 놓았다.
이렇게 차린 돌상 앞에 돌복을 입은 아이를 앉히고, 아이가 첫 번째나 두 번째 잡는 것으로 미루어 아이를 장래를 점치는데, 이것을 ‘돌잡히기’라고 한다.
서천동과 완장리, 마평동, 식금리, 김량장동, 용천리, 미평리 등에서는 아이가 실을 잡으면 오래 살고, 연필을 잡으면 공부를 잘하고, 돈을 잡으면 부자로 산다고 믿는다. 또 죽전동에서는 아이가 떡을 잡으면 미련하다고 하여 잡지 못하게 하였다.
일반적으로 부모와 가족들은 아이가 잘살기를 바라는 뜻에서 쌀과 돈을, 공부 잘하기를 빌면서 책과 붓 등을, 오래 살기를 기원하며 실과 국수를 아이의 손이 닿는 곳에 놓아두었다. 돌잔치가 끝나면 돌떡을 이웃집에 돌린다. 돌떡을 받은 집에서는 떡을 가져온 그릇에 돈이나 쌀, 타래실 등을 넣어 답례를 한다. 오늘날에는 옷이나 장난감, 돈, 금으로 된 돌반지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