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47
한자 李性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증산리 73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0년 2월 30일연표보기 - 이성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이성수, 주렴산 독립만세운동 참가
몰년 시기/일시 1968년 9월 10일연표보기 - 이성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9년연표보기 - 이성수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 증산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주렴산 독립만세운동 참가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성수(李性秀)[1890~1968]는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 출신으로 1919년 주렴산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이성수는 1919년 4월 17일 충남 보령 주산면(珠山面)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한 인물이다. 이성수는 이날 이철규(李哲圭)[1892~1965]·이철원(李哲源)[1900~1979] 등과 함께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여 주렴산(珠簾山)에 올라가 국사봉(國師峰)을 비롯한 3개소에 태극기를 꽂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징을 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렴산의 만세운동은 주산면 증산리 출신인 이철원이 배재학당에 다니던 중 서울의 만세운동을 알리기 위해 고향에 내려 왔다가 동지들을 모아 고향의 만세운동을 역설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4월 16일 만세운동을 전개하려고 하였으나, 이러한 사실이 사전에 누설되어 바로 다음날인 4월 17일에 주렴산에 올라가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성수 등이 참여한 만세운동은 마을 사람들이 만세소리를 듣고 산으로 올라가 합세하면서 규모가 커졌고, 웅천(熊川) 시내로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주모자 18명이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성수도 일경에게 체포되었고, 보령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60도(度)를 받았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보령시에서는 이날의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97년 5월 주렴산 기미독립만세운동선양사업추진위원회를 지원하여 기념비를 주렴산 국수봉에 세웠다. 또한 위원회에서는 매년 4월 16일에 주민들과 함께 3·1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