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1114
한자 聖住里 - 堂山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5리 벌뜸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민정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2년 12월 20일 -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 국보 제8호 지정
의례 장소 산제당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5리 벌뜸마을 지도보기 성주사지 동남쪽 산제당골 바위 아래
의례 장소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5리 벌뜸마을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지도보기
의례 장소 거리제단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5리 벌뜸마을 입구
성격 마을신앙
의례 시기/일시 음력 정월 초아흐렛날
신당/신체 산신제: 산제당|탑제: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거리제: 거리제단
문화재 지정 번호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벌뜸마을에서 음력 정월 초아흐렛날에 풍년과 마을의 평안과 태평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공동 제사.

[개설]

벌뜸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초아흐렛날 한 해 농사의 풍년을 빌고, 마을 전체의 안과태평(安過太平)[탈 없이 태평하게 지나감. 또는 그렇게 지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는 ‘산신제-탑제-거리제’ 순서로 진행된다. 당주 일행은 산신제와 거리제만 지낸다. 다만 거리제를 지내기 전에 마을에 있는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保寧 聖住寺址 大朗慧和尙塔碑) 앞에서 당주의 참여 없이 마을에서 부탁한 주민이 탑제를 지낸다.

[연원 및 변천]

성주리 벌뜸 당산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유래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산제당 상량문을 통해 1880년(고종 17) 이전부터 풍년과 마을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신제는 성주사지 동남쪽 산제당골의 바위 아래에 있는 산제당에서 지낸다. 산제당은 슬레이트 지붕의 1칸 집이다. 대들보에는 ‘용 광서육년경진십일월초일일유시입주상량간좌곤향 호(龍 光緖六年庚辰十一月初一日酉時立柱上樑艮坐坤向 虎)’라고 쓰여 있어 1880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제당 전면에 시멘트로 만든 제단이 있고, 제단 위 벽에 산신도가 걸려 있다.

탑제는 마을에 있는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 앞에서 지낸다. 이어 거리제는 벌뜸마을 입구에 별도의 제단을 만들어 지낸다. 주민들이 제사 당일 낮에 황토 한 짐을 가져다가 사각형으로 평평하게 쌓아 제단을 만든다. 그리고 한쪽 면을 깎은 나무토막 5개를 준비하여 각각 중앙황제장군(中央皇帝將軍), 동방청제장군(東方靑帝將軍), 서방백제장군(西方白帝將軍), 남방적제장군(南方赤帝將軍), 북방흑제장군(北方黑帝將軍)이라고 쓰고, 제단의 동서남북과 중앙에 꽂는다.

[절차]

마을 주민들은 정월 초이틀에 마을회관에 모여 당주(堂主), 제관, 축관 등을 선정한다. 당주 일행은 부부 관계, 비린 음식, 술, 담배, 외출 등을 삼가고, 찬물로 목욕재계를 하면서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다. 만약 마을에 초상이 나면 제사 날짜를 연기한다.

정월 초이틀에 제관을 선정한 다음, 마을 이장이 중심이 된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풍장을 치고 걸립(乞粒)[풍물을 치고 집집마다 다니며 축원을 해주고 돈과 곡식을 구하는 민속놀이]을 한다. 제관과 축관이 대천장에 가서 솥과 자리, 제물 등을 구입한다. 솥과 자리는 제사를 마치고 수고한 보답으로 당주에게 준다.

제사 전날에 마을회관에서 돼지를 잡는다. 산신제에 올릴 머리와 고기 절반은 당주집으로 가져오고, 나머지는 회관에 보관하였다가 다음날 총회를 하면서 먹는다.

마을에서는 제사 당일에 주민 3명을 뽑아 품삯을 주고 제사 준비를 시킨다. 뽑힌 주민들은 산제당에 가서 진입로와 내부를 깨끗이 청소한다. 노구메[산천의 신령에게 제사 지내기 위하여 놋쇠나 구리로 만든 작은 솥에 지은 메밥]를 짓기 위해 돌로 아궁이를 만들고 땔감을 준비한다. 산제당 문 앞 양쪽으로 세 무더기씩 황토를 놓는다. 마을에 내려와서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에 황토를 놓는다. 거리제 지내는 곳에도 황토를 한 짐 가져다 놓고, 땔감도 가져다 놓는다.

① 산신제

정월 초아흐렛날 저녁 5시경에 당주, 제관, 축관이 산제당으로 오른다. 예전에는 마을 풍장패들이 산제당까지 풍장을 치면서 올라갔다. 제관 일행이 제당에 도착하면 바닥에 자리를 깔고 당주집에서 가져온 물로 메를 짓는다. 제단에 백지를 깔고 접시 없이 제물을 진설한다. 제물은 3되 3홉 분량의 백무리떡, 1되 3홉 분량의 메, 돼지머리, 대추, 밤, 곶감, 김, 마른미역, 술잔, 젓가락, 세발심지[종이를 새의 발처럼 밑끝이 세 갈래지게 꼬아 세워놓게 만든 심지] 등을 놓는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에 당주는 분향 재배를 하고 강신한 다음에 첫 잔을 올린다. 이어 축관이 마을의 질병 퇴치, 풍년 등을 기원하는 축문을 읽는다. 축관이 축문을 읽는 동안 당주와 제관은 엎드린다. 독축이 끝나면 제관 일행은 모두 재배를 한다. 이어 술을 올린 다음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주민들이 모두 일년 내내 평안하고 소원성취해 달라는 대동 소지를 먼저 올린다. 다음에 장부에 적힌 사람들을 호명하면서 소지를 올린다. 소지 올리기가 끝나면 제관 일행이 재배하고 음복을 한다. 제물 일부를 떼어 산제당 주변에 던져 놓는다. 그런 다음에 제관 일행이 제물을 거두어 당주집으로 내려온다.

② 탑제

당주집에서는 제관 일행의 저녁을 준비하고 거리제를 지내기 위한 제물을 준비한다. 거리제를 지내기 전에 마을에 있는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에서 간단히 제를 지낸다. 탑비에서 지내는 제사는 아주 옛날부터 지내왔는데, 탑제는 마을 사람 중에 부탁을 받은 사람이 당주의 참여 없이 지낸다. 탑비 앞에 백지를 펴고 술, 밤, 대추, 북어 등을 진설한다. 술을 올린 후 두 번 절을 한다. 그리고 소지를 올린다. 제를 마치면 제물을 그대로 두고 온다.

③ 거리제

마을 입구에서 거리제를 지내기 위해 황토 위에 백지를 깔고 팥시루떡을 시루채 놓는다. 떡시루 안에는 참기름을 담은 작은 종재기를 놓고 불을 밝힌다. 이어 동서남북과 중앙에 준비한 말뚝을 꽂고 말뚝 앞에 탕 세 그릇, 대추, 밤, 곶감, 배, 명태포, 술잔을 놓는다. 거리제를 지내기 전까지 풍물패가 풍장을 울린다. 당주가 분향 재배를 하고 ‘중앙-동-서-남-북’의 순서로 술잔을 올린다.

다음에 축관이 거리제 축문을 읽는다. 독축이 끝나면 모두 재배를 하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축관이 대동 소지를 올리고 이어 당주 소지를 올린다. 이후에는 한 사람이 이름을 부르고 주변에 모였던 사람들이 나와서 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올린 다음 재배를 하고 음복을 한다. 구경 나온 주부와 아이들에게도 떡을 나눠 주고 나머지는 당주집으로 가져간다.

[산신제 축문]

유세차(維歲次) □□정월삭초구일(□□正月朔初九日) 간지생(干支生) □□□ 감소고우(敢昭告于) 산왕대신지위(山王大神之位) 복이조(伏以肇) 개자벽축(開子闢丑) 유산유령(維山維灵) 장좌의음(帳佐宜陰) 응여호향(應如顥響)자이춘정(茲以春正) 감창미성(敢暢微誠) 잠심건도(潛心虔禱) 온두려역(瘟痘癘疫) 양지물침(揚之勿侵) 오수도적(烏獸盜賊) 일체가금(一切呵噤) 창창년등(暢暢年登) 오곡가가(五穀家家) 일치천금(日致千金) 여시발원(如是發願) 감이내흠(感以來歆) 근이청작(謹以淸酌) 서수공신(庶羞恭伸) 존헌(尊獻) 상향(尙饗)

[노제 축문]

유세차(維歲次) □□정월삭초구일(□□正月朔初九日) 간지(干支) 유학(幼學) □□□ 감소고우(敢昭告于) 토지지신(土地之神) 지위복이(之位伏以) 대도여발(大道如髮) 백령소처(百靈所處) 상유교악(上有喬嶽) 방임한천(傍臨寒泉) 기응양재(其應攘灾) 기응소소(其應昭昭) 아도구의(我禱久矣) 소원유하(所願惟何) 백곡숭책(百穀崇幘) 일체가금(一切呵噤) 호랑사갈(虎狼蛇蝎) 조작저돈(鳥雀猪豚) 범제해인(凡諸害人) 저저병축(這這迸逐) 복유준령(伏惟尊靈) 근이청작(謹以淸酌) 서수공신(庶羞恭伸) 존헌(尊獻) 상향(尙饗)

[부대 행사]

산신제와 거리제를 지낸 다음날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경비를 결산하는 총회를 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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