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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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在善 |
영어공식명칭 | Gim Jaes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혜영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 김재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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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김재선 투옥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김재선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부안현 - 전라북도 부안군 |
거주|이주지 | 부안군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의병.
[개설]
김재선(金在善)[1879~?]은 부안 출신으로 1907년(고종 44) 이백겸(李白謙)의 의진에 가담하여 전라북도 무장, 전라남도 영광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김재선은 부안군 우산내면 중계리[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서 살면서 나무장수[신매상(薪賣商)]로 생계를 이었다. 김재선이 의병으로 활동한 시기는, 1907년(고종 44)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이 강제 퇴위되고 한일 신협약[정미칠조약]의 비밀 조항으로 군대가 강제 해산되면서 해산 군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애국지사들이 의병을 일으켜 무장 항일 운동을 전개하던 때였다.
김재선은 이백겸 의진에 가담하여 항일 투쟁을 벌였는데, 1908년(순종 2) 1월 8일부터 동지 10여 명과 함께 전라북도 무주와 장수, 전라남도 영광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 해 1월 23일 김재선은 이백겸을 비롯한 동지 10여 명과 함께 총을 휴대하고 전라북도 무장군 와공면(瓦孔面) 건동(巾洞)의 유도언(庾道彦) 집에 들어가 그를 대정리(大井里)까지 납치하여 엽전 100냥을 군자금으로 징수하였다. 2월에 다시 무장군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된 김재선은, 1910년(순종 4) 전주구 재판소(全州區裁判所)에서 통감부 검사 석천신중(石川信重)의 입회 하에 심리를 거친 후 징역 3년 형이 선고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