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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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承鎬 |
영어공식명칭 | I Seungho |
이칭/별칭 | 운암(雲巖)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혜영 |
출생 시기/일시 | 1890년 - 이승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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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이승호 독립군 자금 제공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이승호 독립군 자금 제공 |
몰년 시기/일시 | 1966년 - 이승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이승호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부안현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승호(李承鎬)[1890~1966]는 1920년 상하이 임시 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3,600원이라는 거금을 지원하였고 지역에서는 빈민 구휼에 앞장섰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운암(雲岩)이다. 아버지는 중추원 의관을 지낸 이낙선(李樂善)이다.
[활동 사항]
이승호는 지금의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여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에 능하였다. 1920년 11월 상하이 임시 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이완식(李完植), 김진억(金鎭億), 이문용(李文庸), 이영필(李永弼) 등이 이승호의 집을 방문하여 군자금을 요구하자 600원을 헌납하였다. 이후에도 1921년 1월 200원과 1,800원, 1921년 1월 1,000원을 제공하는 등 모두 네 차례에 걸쳐 3,600원이라는 막대한 액수를 헌납하였는데, 이 일이 알려지며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이승호는 지역의 빈민을 구휼하기 위하여 양곡 수백 석을 기부하였고, 보성전문학교 설립 기금을 출연하였으며, 부안동초등학교에 운동장 부지를 희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2004년 부안군 부안읍 석정로 313[봉덕리 446번지] 부안동초등학교 운동장에 ‘애국지사 운암 이승호 선생 송덕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