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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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飛山洞 出土 靑銅器 |
영어공식명칭 | Daegu Bisan-dong Chulto Cheongdonggi|Bronze Artifacts Excavated from Bisan-dong, Daeg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김병섭 |
[정의]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 와룡산 일대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물 일괄.
[개설]
대구 비산동 출토 청동기는 1956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 와룡산 기슭에서 주민이 우연히 발견한 유물 일괄이다. 지름 5~6m 쯤 되는 범위 안에서 각종 청동기와 철기가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세형동검(細形銅劍) 5점, 동투겁창[銅矛] 3점, 동꺾창[銅戈] 2점 등 청동 무기와 함께 호랑이 모양 허리띠 고리[虎形帶鉤], 쇠뿔 모양 동기[牛角形銅器] 등이다. 대구 비산동 출토 청동기 가운데 일부가 1971년 12월 21일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로 국보 제137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형태]
1. 국보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세형동검1은 검 부속구와 안테나식 칼자루끝장식[劍把頭飾]이 함께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칼몸 너비가 좁고 가늘고 길며, 봉부(鋒部)는 상대적으로 길고, 결입부를 강하게 마연(磨硏)하였다. 제1절대와 제2절대가 명확하며, 검신 전체에 능각(稜角)이 확인된다. 크기는 길이 31.1㎝이다. 칼자루끝장식은 2마리 새가 서로 등을 대고 머리를 뒤로 돌린 형상을 한 쌍조형(雙鳥形)이다.
세형동검2는 검경 고정구와 함께 출토되었다고 전해진다. 검날 상당 부분이 결실되었다. 봉부는 짧고, 제1절대와 제2절대가 명확하며, 검신 전체에 능각이 확인된다. 크기는 잔존 길이 32.2㎝, 검신 최대 너비 3.3㎝이다.
세형동검3은 봉부와 검날 일부가 결실되었다. 제1절대와 제2절대가 명확하며, 결입부를 강하게 마연하였다. 등대 양쪽으로 각각 1조의 혈구(血溝)가 검 하단부까지 확인된다. 크기는 잔존 길이 23.5㎝, 검신 최대 너비 3.6㎝이다.
세형동검4는 검날 일부와 검신 하단 일부가 결실되었다. 봉부는 길며, 검신 하단부는 역사다리 모양이다. 제1절대와 제2절대가 명확하며, 검신 전체에 능각이 확인된다. 크기는 잔존 길이 24㎝, 검신 최대 너비 2.9㎝이다.
세형동검5는 검날 상당 부분이 결실되었다. 제1절대와 제2절대가 명확하고, 검신 전체에 능각이 확인된다. 크기는 잔존 길이 23.3㎝, 검신 최대 너비 2.4㎝이다.
이 외에 부속품으로 칼자루 장신구, 칼집 부속구, 칼끝 장신구 등과 기타 파편들이 있다. 칼자루 장신구는 평면이 은행처럼 생긴 타원형 장신구로서 둘레에는 평행선 무늬가 연속해서 새겨져 있다. 칼집 부속구는 청동으로 된 타원형 고리로, 목재 칼집을 보강하고 장식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칼끝 장신구는 길이 3.75㎝, 밑변 길이 2.9㎝로 나무로 된 칼집의 끝에 장식한 것이다. 그 외에 칼자루로 생각되는 조각 1점이 있다. 세형동검5는 칼과 손잡이 칼끝 장식이 별개로 만들어진 점으로 보아 제작지가 한반도 남쪽 지방으로 추정된다.
2. 국보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투겁창 및 꺾창
동투겁창1은 완형으로 모신(鉾身)의 형태가 이등변삼각형에 가까운 세형동모이다. 관부(關部)는 돌출되었고, 날과 능각은 관부까지만 형성되어 있다. 공부 끝에는 돌대가 1조 돌아가며, 한쪽 측면에 횡으로 뉴(紐)가 부착되어 있다. 크기는 전체 길이 40.1㎝이다.
동투겁창2는 완형으로 모신의 봉부 쪽이 넓어지는 중세형동모이다. 날과 능각은 관부까지만 형성되어 있다. 공부 끝에는 돌대가 1조 돌아가며, 한쪽 측면에 횡으로 뉴가 부착되어 있다. 크기는 전체 길이 66.9㎝이다.
동투겁창3은 완형으로 모신의 봉부 쪽이 크게 넓어지는 중광형동모이다. 관부는 돌출되었으며, 날과 능각은 관부까지만 형성되어 있다. 공부 끝에는 넓은 돌대가 1조 확인되며, 한쪽 측면에 횡으로 뉴가 부착되어 있다. 크기는 전체 길이 57㎝이다.
동꺾창1은 완형에 가까우며, 과신(戈身)이 3조각으로 파손된 채 출토되었다. 크기는 소형이며, 과신은 봉부 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이형동과이다. 날은 세우지 않아 등대의 단면은 원형이며, 천공의 형태는 원형이다. 세형동과가 의기화된 형태이다. 크기는 전체 길이 19㎝이다.
동꺾창2는 크기가 거대하고, 과신이 과하게 넓어진 광형동과이다. 과신은 봉부 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며, 날은 세우지 않았다. 봉부 양쪽의 혈구에는 어골문이 시문되어 있으며, 끝에는 장방형 천공이 양쪽으로 확인된다. 내는 과신에 비하여 좁고 짧으며, 삼각집선문이 시문되어 있다. 크기는 전체 길이 57㎝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투겁창 중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한다.
[의의와 평가]
세형동검과 함께 출토된 쌍조형 칼자루끝장식은 새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에서 영천 용전리·전 평양·일본 다쓰우마 고고자료관[辰馬考古資料館] 소장품과 함께 고식에 속하는 것이지만, 함께 출토된 동모 등은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의 것이어서 대구 비산동 출토 청동기는 여러 무덤에서 출토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동모를 기준으로 보면 기원 전후 시기의 무덤 유구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이며, 만촌동·평리동·용전리·어은동 등의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 유물의 조합상과 유사하고, 같은 형식의 유물들로 구성되어 있어 경상북도 내륙 지역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