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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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一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우용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해당하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과 대왕면 일대에서 1919년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개설]
현재의 강남구에서는 광주군 언주면 역삼리[현 강남구 역삼동]와 대왕면 수서리[현 강남구 수서동]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이들 지역은 서울에 가까운 농촌 지역으로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전파하는 데 교량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지역의 만세운동은 농민의 생존권 요구를 중심에 두고 전개된 것으로서, 농민 주도 3.1운동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역사적 배경]
1910년 한국을 강제 병합한 일본은 토지조사사업과 동양척식주식회사 이민 등을 통해 한반도에 식민지 지주제를 강권적으로 구축하는 한편 조선회사령 등으로 자본의 이동과 투자를 제한했다. 일제는 언론, 집회, 출판, 결사 등 한민족의 기본권은 철저히 억압했으며, 헌병경찰제도를 채택하여 모든 형태의 저항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 통치에 대한 한민족의 저항 의식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으로 참혹한 피해를 입은 열강의 국민들 사이에서는 그동안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반성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사회진화론이 후퇴하고 인도주의가 고조되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민족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발생한 러시아 혁명도 우승열패, 약육강식의 진화론적 세계관을 흔들었다. 특히 1919년에 결성된 코민테른은 모든 나라의 노동자와 압박받는 약소민족이 단결하자고 주장했다.
세계 사조가 변하여 정의와 인도가 인류의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는 것을 알게 된 조선 지식인들은 독립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한민족의 단합된 뜻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대규모 민족운동을 계획했다. 그러던 중 고종이 갑작스럽게 승하했는데, 독립운동의 기미를 알아차린 일제가 독살한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일제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한층 깊어졌다.
[경과]
고종의 장례일이 1919년 3월 3일로 정해지자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있던 종교계 지도자들과 학생들은 거사 일자를 3월 1일로 정했다. 3월 1일, 종교계 지도자들로 구성된 ‘민족 대표’들은 서울의 음식점 태화관에서 미리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일본 경찰에 자수했다.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평화롭게 표현하자는 뜻에서였다. 같은 무렵, 학생들은 서울 탑골공원과 덕수궁 등지에서 태극기를 꺼내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운동에 돌입했다. 서울 시민들과 고종의 장례에 참례하기 위해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도 합세했다.
만세운동은 곧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현재의 강남구에 해당하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과 대왕면 일대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언주면 역삼리[현 강남구 역삼동]에서는 그해 3월 28일 밤 이중인 등 주민 100여 명이 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대왕면 수서리[현 강남구 수서동]의 만세운동은 약관 20세의 이시종이 주도했다. 그는 이재순 등 마을 주민 100여 명을 규합하여 면사무소를 점거한 뒤 『조선독립신문』을 낭독하고 “오늘까지는 이 면사무소에서 일본을 위하는 일을 보고 있었지만, 이제 조선이 독립하게 되어 부역, 세금 등은 필요 없게 될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이시종은 다음날 헌병에게 체포되었고 일제 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3.1운동 은 일제의 무단통치에 맞서 맨 손으로 벌인 거족적인 독립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한민족의 독립 의지와 일본 식민 통치의 야만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총칼만으로는 한민족을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제는 민족분할 지배 방식인 문화통치를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3.1운동 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 식민지에서 처음 일어난 대규모 민족운동이었다. 민족 지도자들은 민족자결주의가 패전국 식민지에만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정의와 인도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초하여 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3.1운동에 뒤이어 중국에서는 일본의 침략에 반대하는 5.4운동이 일어났고 인도에서는 영국의 식민 통치에 항의하는 민족 운동이 확산되었다.
3.1운동 으로 독립을 선언한 이상 하루 속히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갔고,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일반 민중도 만세 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권익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을 자발적으로 펼쳐 나갔다. 현재의 강남구 지역인 광주군 언주면, 대왕면의 3.1운동은 특히 일제의 가혹한 부역 징발과 세금 징수에 반대하는 생존권 투쟁의 일환으로 전개된 사례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