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4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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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婚禮服 |
영어음역 | hollyebok |
영어의미역 | wedding clothes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의복/의복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집필자 | 최혜정 |
[정의]
강릉 지역의 전통 혼례에서 입는 의복.
[개설]
우리나라의 일반적 혼례복과 강릉의 혼례복이 다른 점은 강릉에서는 혼수 품목 1위가 도포라는 점이다.
도포는 원래 앞깃이 직선이고 등 뒤에 어깨선에서부터 내려와 진동선 밑에서부터 전삼 자락[양반의 뒷모습을 감추기 위한 덧자락]이 있는 포이다. 도포의 착용의 기원은 알 수 없으나 기록이나 실물 등을 보면 16세기 전후에 착용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도포는 모두 홑으로 봉재하며 옷감으로는 면, 마, 저, 사 등이고 저포[모시]의 도포가 가장 많다. 거의 백색으로 만드는데 엷은 청색의 도포를 만들기도 하며 이것이 강릉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연원]
김정남[예림회 회장: 예림회는 강릉의 종가집 종부들의 모임]의 구술에 의하면 강릉에서는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7세 때 도포베를 삼으라 하고 9살이 되면 도포베가 완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예향의 고장이라는 이유로 필수적이었다고 한다. 도포는 시집갈 때 반드시 가져가야 할 덕목으로 상례 때 수의로 도포를 반드시 입혀야 했고, 제삿날에도 베도포를 입는 풍속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 측에서는 혼례시 강포로 만든 베도포를 지어갔고 강릉의 양반집에서는 아들이 장성하면 장가갈 때 입히기 위해 청의 도포를 준비하여 명절 때에도 입었다고 한다.
강릉에서 혼수품에 도포를 가져가는 것은 그만큼 예를 잘 갖추어야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현재에도 혼례의 예를 갖추기 위한 품목으로 전승되어 오고 있는데 지역마다 봉재 방법에 있어 다소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
[형태]
신랑 혼례복의 형태는 아래와 같다.
속옷으로는 고의와 속적삼을 내복으로 입고 웃옷으로 계절에 따라 적합한 바지·저고리를 입었으며 그 위에 조끼, 마고자를 입고 두루마기를 입은 후 도포를 입고 겉에는 관복을 입는다.
새로 장만하는 것이 아니라 편리하게 입을 수 있는 대로 허리에는 서대를 띠며 머리에는 사모를 쓰고 목화를 신는다. 손에는 보이지 않도록 흰색 한삼을 낀다. 이 옷이 혼례예복으로 나라에서 허용한 옷이다. 평소에는 입지 못하지만 인륜지대사인 결혼식에만 허용하였다. 흉배, 대대, 색, 모양도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안에 입는 옷들은 화려해 두루마기도 어리면 연두색에 남전복, 복건과 조끼는 남색, 바지만은 양보라, 회색 등이며 저고리는 보통 옥색, 마고자는 보라·옥색·자주·남색 등 화려한 옷들이었다. 신랑집에서 일습이 장만되며 신부집에서도 ‘관례벗김’ 이라는 일습이 장만되고 더욱 갖춰 옥색 모시도포까지도 하는 것이 반가의 법도이다.
신부 혼례복의 형태는 아래와 같다.
다홍 겉치마, 속치마[남색], 단속곳[또는 넓은 바지, 바지, 속속곳, 다리바지], 저고리[연두·노랑·연분홍 삼회장저고리], 적삼[연분홍 모시 또는 사], 원삼, 족두리, 용잠, 뒷댕기, 앞댕기에 수모가 와서 화장을 곱게 시키고 초례청에 임한다.
신부집에서 3일을 치르고 친영례를 받게 되어 시댁에 가면 헌고구례를 거행하는데 어느 댁에서는 예를 받기 전에 시어머님이 장만한 관례벗김 옷으로 갈아 입혀가지고 절을 받는 집안도 있고, 절을 받은 후에 시어머니가 겉치마, 저고리 즉 친가에서 입고 온 노랑저고리를 벗기고 예를 올렸으니 녹의홍상으로 완전히 어른 됨을 축하한다. 그러면 신부는 다시 육례를 갖췄음을 표하는 표시로 다시 한번 절을 한다. 이때 시어머니는 시댁에서 장만한 비녀를 꽂아주고 대삼작노리개를 달아주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을 맞이한 것이 된다.
큰상을 받을 때는 귀한 수란치마[치마아래부분에 금박으로 문양을 장식한 것으로 궁중에서만 입을 수 있는 옷이다. 왕의 혼례시 왕비는 치마 아래 부분에 금박 장식선이 두 줄이 장식된 대란치마를 입는다] 활옷이 상할까봐 시댁에서 장만한 분홍모시앞치마를 두르고 큰상을 받게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강릉도포는 강릉 지방에서 혼례품으로 신부가 신랑에게 주었던 도포로 현재까지 혼례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른 지역의 도포와 형태적인 면에서 같으나 방한이나 예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옛부터 혼례용품의 목적으로만 만들어진 것이다. 신부가 결혼할 때 반드시 이 도포를 신랑에게 주어야 한다고 한다. 신랑은 도포를 결혼해서 조상에게 인사드릴 때와 제사 드리는 날, 자신이 죽어서 관속에 들어 갈 때 입고 들어가야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도포처럼 평상시에는 입지 않고 위의 세 가지 경우에만 입는다. 현재에도 강릉에는 혼례용 도포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집이 많다고 한다.
강릉도포는 강릉 지방에서 자라는 삼을 가지고 짠 삼베를 의료로 사용하였고 이를 강포라고 한다. 지금은 삼척에서 삼이 많이 재배됨으로 그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색은 원래 삼베가 지닌 색이고 누런빛이 나고 여기에 치자물을 드려 고운 노랑색이 나오게 한다. 강릉 단오장에는 삼베시장이 따로 있어 많은 삼베를 볼 수 있었는데 인근에서는 단오장을 기다려 좋은 삼베를 골라 구입해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강원총람』에 ‘도포는 지방과 집안에 따라 동정을 다는 곳도 있고, 동정을 달지 아니하는 곳도 있으며 도포를 입으면 반드시 도포 띠를 가슴에 매야 한다. 도포 띠는 약식은 도포와 동일한 천으로 만드나 대개는 예복으로 쓰이는 탓에 명주실을 꼬아 수술을 달아서 맨다,’라 하였듯이 강릉에서는 도포에 동정을 달지 않고 입는 집안이 있다. 이것은 강릉의 경우 아직도 혼인할 때 집안을 가리는 풍습이 남아 있어 구유[선천: 적자 출신], 신유 [부천: 서자 출신] 이라 하여 구유인 사람은 신유인 사람과 혼인하는 것을 꺼리는 풍습이 있는데 이러한 사회적 풍습에서도 보이듯이 도포를 착용 할 때도 구유인 사람은 동정을 달지 않고 입는 사람이 많다고 하였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정의 유무로 신구유로 구별하였다고 한다. 이 같은 풍습은 강릉 지방의 특징인 것이다.
또한 강릉에서는 특별히 여름살이라는 어려운 예법이 있었는데 예물(禮物)을 건네준 사람들에게 여름옷을 지어 바치는 법이다. 많이 받은 어른께는 각기 내외를 껴서 준다. 그리고 어린이와 하인들까지 신경을 써서 여름옷과 음식을 준비했다고 한다. 일종의 답례(答禮)인 셈인데 받은 분들은 각기 나들이옷으로 긴요하게 입는다. 여름이 간 다음 가을이 되어 혼수를 챙겨 일년에서 반년까지 결혼 후 왕래하다 시댁으로 간다고 한다. 신랑은 첫 생일 ,30, 40, 50, 60을 넘길 때 마다 일습이 오며 시부모님 첫 생신, 회갑, 칠순, 팔순에도 옷을 선물한다.
또한 생신날 효도버선이라는 것이 있는데 시집갈 때 친가에서는 버선 감 당목을 다듬어 장속에 넣어가지고 간다. 집안 어른들 버선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어른의 생신날 아침에 다홍보에 싸서 어른 앞에 놓고 절을 올려야 했다고 한다.
[의의 및 평가]
강릉은 예향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으며 혼례시 유난히 많은 예물을 시댁에서 내어 놓았다고 한다. 강릉은 옛부터 도포를 다른 어느 지방보다도 많이 입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신부의 혼수 품목인 도포는 조상께 예를 지키기 위한 일등 품목으로 수의의 역할까지 한 것으로 보아 그 의미는 남다르다 하겠다. 딸이 태어나면서부터 베를 삼아 그 베를 가지고 도포를 만들어 시집갈 집안에 도포를 바치는 예만 보아도 높은 격식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으며 현재에도 혼수 준비에는 도포를 으뜸으로 준비하며 전승되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