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579 |
---|---|
한자 | 三選改憲反對示威 |
영어공식명칭 | Demonstration for Anti-constitutional Amendment for Reelection for the Third Term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용균 |
발단 시기/일시 | 1969년 6월 17일 - 거창 고등학교 전영창 교장 훈화 |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69년 6월 19일 - 3선 개헌 반대 시위 거창 고등학교 학생들의 시위 시작 |
종결 시기/일시 | 1969년 6월 19일 - 3선 개헌 반대 시위 교장의 설득으로 귀교 |
전개 시기/일시 | 1969년 6월 19일 - 거창 3선 개헌 반대 시위 전개 |
발생|시작 장소 | 거창 고등학교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 411 |
종결 장소 | 거창 시장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 일대 |
[정의]
1969년에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 고등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삼선 개헌 반대 시위.
[개설]
1969년 6월 거창 고등학교 학생들은 삼선 개헌 반대 시위를 벌여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 기도에 저항하였다.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은 전영창 교장의 전인 교육에 기인한 바 컸다.
1969년 6월 17일 화요일 전영창 교장의 훈화는 삼선 개헌 반대 시위의 촉발제가 되었다. 설교의 요지는 “불의를 보고 일어설 줄 모르고 잘못을 알면서 참고 있는 젊은이들은 교육할 가치가 없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날 저녁 3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여러 모임에서 시위가 논의되었다. 학생회 규율 부장 강영규를 중심으로 신동성, 이영식, 최철영, 박철재, 김내준, 조재철, 김진용, 김영덕 등은 하숙집에서 모임을 갖고 6월 19일에 시위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같은 시각 이형수, 권쾌현, 이홍국, 성낙화 등도 하숙집에 모여 시위를 계획하였다. 그 밖에도 몇몇 모임이 있었다.
이튿날 학생들의 의견은 학생회로 수렴되었다. 6월 18일 저녁 학생회 대대장이었던 김내준의 소집으로 권쾌현, 이홍국, 이형수, 서영주, 하재수, 최철영 등은 거창읍 포교당 옆 박기배의 하숙집에서 모여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선언문 작성 조, 학생 동원 조, 시위 준비 조로 나누어 선언문을 작성하고 태극 상회에서 베를 구하여 플래카드를 제작하였다.
6월 19일 목요일 아침 학생들은 행동을 개시했다. 대대장 김내준과 규율 부장 강영규가 중심이 되어 규율부와 각 학급 반장을 통해 학생들에게 거사 계획을 알리고 전교생[12학급, 360여 명]을 운동장에 모았다. 학생들은 대오를 지어 죽전 삼거리, 거창읍 로터리, 거창군청 앞으로 행진하면서 “삼선 개헌 반대! 대한민국 만세!”라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 대열은 군청 앞에서 경찰에게 막히자 거창 시장으로 방향을 돌려 그곳에서 선언문을 낭독하고 시위를 전개했다.
이때 전영창 교장은 학생들에게 “너희들의 주장이 옳다. 이미 너희들의 뜻이 충분히 전달되었으니 이제 학교로 돌아가자.”라고 설득했다. 학생들은 교장의 말에 동의하고 대오를 지어 교가를 부르면서 귀교하였다.
그 후 전영창 교장이 경상남도 교육청의 시위 주동 학생 처벌 요구와 지역구 국회의원 민병권의 폐교 위협에 굴복하지 않자, 교육청은 학생 정원 초과, 무자격 교사 채용, 재정 처리 절차 문제 등 9개 항을 들어 교장 승인을 취소하였다. 전영창 교장은 1970년 2월 26일 대구고등 법원에 행정 소송을 제기하여 12월 21일 승소하였고, 상고심에서도 1971년 4월 28일 대법원 판결로 승소해 다시 교장으로 복귀하였다. 거창 고등학교 삼선 개헌 반대 시위는 전인 교육을 실천하는 학교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독재 정권에 대한 대응을 보여 준 특별한 사건이었다.
[역사적 배경]
1969년 박정희 정권이 삼선 개헌을 시도하자 전국적인 저항이 일어났고, 전영창 교장에게 전인 교육을 받은 거창 고등학교 학생들은 독재 정치에 대한 저항 의식이 강하였다.
[경과]
거창 고등학교 학생들은 1969년 6월 17일부터 시위를 준비한 후, 6월 19일 전교생이 거창 시내를 행진, 삼선 개헌 반대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결과]
경상남도 교육청은 시위를 주동한 학생들의 처벌을 거부한 전영창 교장에게 교장 승인을 취소하였고, 이후 전영창은 행정 소송에서 승소하여 교장으로 복귀하였다.
[의의와 평가]
거창 지역에서 일어났던 최초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