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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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部里 |
영어음역 | Sangbu-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상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순분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지례현아 위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상부리(上部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지례군 하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부·하부(下部)·장촌(匠村)·동산(東山)이 통합되어 김천군 지례면 상부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지례면 상부리로 개칭되었고, 1993년 상부1리·상부2리로 나누어졌다. 1995년 김천시 지례군 상부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감천을 사이에 두고 구산 아래에 상부, 방가산 아래에 남산이 자리 잡고 있다. 남산은 교리 왼쪽 감천을 건너 울곡리 방면으로 가다가 절골산을 배후로 하여 앞으로 감천이 비켜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현황]
상부리는 교리와 함께 지례면 소재지로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2.27㎢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71세대에 361명(남자 178명, 여자 18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상부1리·상부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조선 성종 때 문약(文略)이 합천에서 옮겨 와 정착한 이래 대대로 김해 김씨와 남평 문씨 순평공파(順平公派)가 집성촌을 이루어 왔다. 국도 3호선이 상부와 남산 사이를 관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일찍이 지례장이 섰다. 문화 유적으로 구산 성터, 구산 봉수 터, 성황당 터가 있다.
상부리는 예부터 지례흑돼지로 불리는 토종 흑돼지 산지로 이름이 높다. 지례흑돼지는 외래종과 달리 순흑색에 온순하고 작은 체구가 특징이다. 비계가 적고 불포화 지방산이 다량 함유되어 쫄깃하고 담백한 맛으로 정평이 나 조선 시대 궁중 진상품이었다. 1976년부터 지례신용협동조합에서 흑돼지 양돈장을 운영하다 2010년 현재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 개량종과 달리 성장 속도가 느려 수지타산이 맞지 않은 탓에 최근 사육 두수가 크게 줄었다.
상부리 뒷산인 봉화대산과 주악산에는 봉화대와 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 지례가 군사·교통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산에는 고려가 망하자 지례로 낙향해 은거하면서 후진을 양성한 반곡 장지도(張志道)의 묘소가 있다. 제자인 윤은보(尹殷保)와 서즐(徐騭)이 봉화대산과 주악산 사이로 난 고개를 쉼 없이 드나들며 지극 정성으로 스승의 묘를 살피는 효심에 탄복한 호랑이가 노루를 물어다 주어 제사를 지냈다 하여 이름 붙은 정성고개가 있다.
자연 마을로는 상부·남산이 있다. 남산은 현청 소재지인 교리 동쪽에 있어 동산이라 하였다가 마을 남쪽 야산에 남산사(南山寺)가 있어 붙인 이름이다. 남산 뒤 방가산을 가로지르는 똥재는 성주로 연결되는 고개로 증산면의 돌목재·바람재, 조마면의 살티재, 감천면의 별미재, 남면 능밭재와 함께 삼국 시대 이전부터 성주 지방의 성산가야와 소통하던 유서가 깊은 고개이다.
똥재는 원래 현청 소재지인 교리 동쪽에 있어 동재[東峴]라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음이 변해 똥재가 되었다. 일설에는 과거 지례현이 성주 경산부(京山府) 관할일 때 성주목사의 호출을 받고 급히 성주로 달려갈 때마다 현감을 태운 가마꾼들이 길이 험해 똥을 쌀 정도로 힘들었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똥재 주변에서 발견된 선사 시대 유적은 1991년 발굴된 구성면의 송죽리 유적보다 시대가 앞서 남산 일대가 삼한 시대 이전부터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
상부리의 명물인 지례방천은 잦은 수해로 피해를 입는 현민들을 위해 지례현감 이채(李采)[1745~1820]가 총력을 기울여 쌓은 둑이다. 당시 현민들은 그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제방을 이공제(李公堤)라 하였다. 이채는 나아가 상부리와 교리 사이에 보조 제방인 세뚝을 쌓아 현민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교리 일대를 보호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실제로 지난 2002년 수해 때도 세뚝 덕분에 교리 일대가 수해를 입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