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746 |
---|---|
한자 | 三綱行實圖 |
영어음역 | Samganghaengsildo |
영어의미역 | Illustrated Guide to the Three Relationships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540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남권희 |
간행 | 1434년 |
---|---|
소장처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540 |
성격 | 서적 |
편자 | 설순 등의 수명찬(受命撰) |
권책 | 1책 |
규격 | 21.7㎝[가로]|37.6㎝[세로] |
어미 |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덕원당 고문헌자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간행된 삼강행실효자도(三綱行實孝子圖).
[편찬/간행 경위]
1428년(세종 10) 진주에 거주하는 김화(金禾)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 이에 강상죄(綱常罪)[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에 어긋난 죄]로 엄벌하자는 주장이 논의되었을 때, 세종이 엄벌에 앞서 세상에 효행(孝行)의 풍습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서적을 간포(刊布)해서 백성들에게 항상 읽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를 밝히면서 만들어진 것이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이다.
직제학(直提學) 설순(偰循)[?~1435] 등은 세종의 명을 받아 효제(孝悌)를 돈독히 하고 풍속을 바로잡고자 『효순사실(孝順事實)』과 『효행록(孝行錄)』 등을 참고하여 1432년에 『삼강행실도』를 편찬하고, 이듬해인 1433년에 주자소(鑄字所)에서 판각을 마쳤으며, 1434년에 중외에 널리 반포하였다. 『삼강행실도』는 ‘삼강행실효자도(三綱行實孝子圖)’·‘삼강행실충신도(三綱行實忠臣圖)’·‘삼강행실열녀도(三綱行實烈女圖)’의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후 1471년(성종 2) 각도의 관찰사로 하여금 중간(重刊)하게 하였으며, 1481년(성종 12) 무렵에 보급 확대와 대중화를 목적으로 언해 작업이 이루어졌다.
한편, 1490년(성종 21)에는 세종 대의 초간본이 분량이 너무 많아 보기 어려우므로 충신·효자·열녀 각 35인을 뽑아 한 책으로 간행하였다. 현전하는 판본은 대부분 선정본(選定本) 이후의 판본들이며, 그 이전의 판본은 매우 드문 편이나, 덕원당 고문헌자료관에 소장되어 있는 『삼강행실도』는 원간본으로 ‘삼강행실효자도’ 부분이다.
[형태/서지]
1책으로, 장정은 전통적인 오침 선장(五針線裝)으로 되어 있다. 인출한 종이는 세종 연간의 간행본에서 나타나는 얇은 저지(楮紙)이다. 판심에는 대흑구가 나타나 임진왜란 전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어미는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21.7㎝, 세로 37.6㎝, 반곽 크기는 가로 16.7㎝, 세로 23.4㎝이다. 본서의 저본은 덕원당 고문헌자료관 소장본이다.
[구성/내용]
덕원당 고문헌자료관 소장본은 『삼강행실도』의 효자 부분인 ‘삼강행실효자도’ 1책이다. 외형을 살펴보면 앞표지가 없고, 뒤표지도 일부 떨어졌으나 본문은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책의 구성은 권두에 맹사성(孟思誠)의 진전문(進箋文)[1432년] 2장, 권채(權採)의 서문[1432년] 3장, 효자도 목록[110인] 3장이 있다. 본문은 「허자매수(許孜埋獸)」, 「효신여묘(孝新廬墓)」, 「은시단지(恩時斷指)」, 「성무구어(成茂求魚)」 등으로 4인이 누락되어 106인이 수록되어 있으며, 인물 별로 전면에 판화 1면, 후면에 그 행적과 함께 시와 찬(贊)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덕원당 고문헌자료관 소장의 『삼강행실도』는 세종 대에 간행된 원간본으로 비록 권수에 「반포교지문(頒布敎旨文)」이 없고 본문에 4인의 행실 부분이 탈락되어 있으나 맹사성의 진전문을 비롯해 권채의 서문·목록 등이 완전하게 남아 있어 성종 때 간행된 판본 이전의 「효자도(孝子圖)」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106개의 도판이 온전하게 남아 있고 새김 또한 정교하여 미술사와 판화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