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654
한자 元曉寺浮屠·碑群
영어공식명칭 Pagoda·Stele of Buddhist Group of Wonhyo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 1514-35[금곡동 846]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염승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7년연표보기 - 원담 내원 승탑 건립
건립 시기/일시 1944년연표보기 - 일조화상 실적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984년연표보기 - 진성당 부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춘곡거사 송화식 부도비, 청신녀 금봉화조순임 공덕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998년연표보기 - 금학김규현탑성거사공덕비 건립
현 소재지 원효사 -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 1514-35[금곡동 846]지도보기
성격 부도|비
관련 인물 원담|회운|원효|일조|응담|일학|조순임|김규현|송화식|지응현|김계
재질 석재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곡동 원효사 인근에 있는 10여 기의 부도·비군.

[개설]

원효사원효사 인근에 있는 10여 기의 부도와 비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이나, 일부 현대에 건립되기도 하였다. 원효사 부도·비군(元曉寺浮屠·碑群)은 고승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것도 있지만, 단지 해당 인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도 있으며, 원효사의 불사에 많은 공덕이 있는 재가자(在家者)를 기리기 위한 부도와 비도 있다. 이 중에는 친일 행위를 한 송화식(宋和植)의 비도 있다.

[위치]

원효사 부도·비군은 여러 곳에 산재하고 있다. 우선 원효사와 무애암(無碍庵) 갈림길에 7기의 부도와 4기의 비가 있으며, 원효사 입구 석탑 옆에 응담화상 기념탑(應潭和尙紀念塔)이 있다. 그리고 원효사 경내에 4기의 비가 있으며, 원효사 공양간 동쪽 오솔길을 따라 100미터 정도 걸어가면 원효사동부도(元曉寺東浮屠)가 있다.

[구성]

원효사 부도·비군은 왼쪽에서 오른쪽 순으로 팔각원당형 부도(八角圓堂形浮屠), 춘곡거사 송화식 부도비(春谷居士宋和植浮屠碑), 지민당 부도(志敏堂浮屠), 원담 내원 승탑(圓潭乃圓僧塔)[원담화상탑(圓潭和尙塔)], 199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팔각원당형 부도, 회운당 부도(會雲堂浮屠), 원효국사 부도(元曉國師浮屠), 청신녀 금봉화조순임 공덕비(淸信女錦奉華趙順任功德碑), 일조화상 실적비(一鹤和尙實蹟碑), 진성당 부도(眞惺堂浮屠), 금학김규현탑성거사공덕비(金鹤金圭怰塔成居士功德碑)가 있다.

[부도]

원래 맨 왼쪽에는 구형(球形)의 춘곡거사 송화식 사리 부도가 있었지만, 지금은 팔각원당형 부도가 있다. 팔각원당형 부도는 각 부분에 장엄조식(莊嚴彫飾)이 가득하고, 연꽃과 연봉형(蓮峰形)의 보주(寶珠)가 있는 상륜부가 인상적이다. 송화식은 1961년 사망하였으며, 다비(茶毘) 때 사리가 나와 이를 보관하기 위하여 원효사 공터에 부도를 건립하였다. 송화식은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항일운동] 때 학생들의 무료 변론을 담당하였고, 전남대학교를 비롯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교육기관 육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1930년대 후반부터 친일 행위를 하였다. 춘곡거사 송화식 부도비는 1992년에 세워졌다.

지민당 부도는 석종형(石鐘形) 부도이다. 탑신에 '지민당(志敏堂)'이라는 탑호(塔號)가 음각되어 있다. 탑신의 상하부에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이 돋을새김되었다.

원담 내원 승탑은 1927년에 건립된 부도로 원형의 지대석(地臺石), 방형의 중대석(中臺石), 반원구형의 상대석(上臺石), 장방형의 탑신, 옥개석(屋蓋石)으로 구성되었다. 탑신의 정면에 '원담화상탑(圓潭和尙塔)'이라는 탑호가 음각되어 있다. 탑호 좌우에 명문(銘文)이 있어 건립 연도와 원담화상의 내력을 알 수 있다. 원담화상은 회운대사(會雲大師)의 제자로 1831년(순조 31) 법당을 중수하였고, 1847년(헌종 13) 칠성전(七星殿)을 건립하였다.

회운당 부도와 원효국사 부도는 모두 석종형 부도이다. 방형의 지대석, 계란형 탑신, 보주로 구성되었다. 두 부도는 약간의 높이 차를 제외하고 매우 흡사하다. 탑신의 정면에 장방형의 액(額)을 새기고, 그 안에 '회운당(會雲堂)', '원효국사(元曉國師)'라는 탑호를 음각하였다. 회운대사는 1789년(정조 13)에 선방(禪房)을 중창하였으며, 1802년(순조 2)에 대웅전을 중창하였다. 원효국사 부도는 신라시대의 고승인 원효를 기리기 위한 부도로 여겨진다. 회운당 부도와 원효국사 부도는 1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회운당 부도, 원효국사 부도 뒤에는 199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팔각원당형 부도가 있다. 팔각원당형 부도는 각 부분에 장엄조식이 가득하다.

진성당 부도는 대리석을 사용하여 1984년에 건립된 석종형 부도이다. 기단부는 방형의 지대석, 방형의 하대석, 8각의 앙련대(仰蓮臺), 원형의 복련대(覆蓮臺)로 구성되었다. 탑신은 장타원형(長楕圓形)으로 정면에 '진성당(眞惺堂)'이라는 탑호가 음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8각으로 내림마루에는 보주를 물고 있는 용두(龍頭)를 새겼다. 상륜부는 앙련과 복련이 중첩된 부재 위에 보주를 올렸다.

[비]

청신녀 금봉화조순임 공덕비는 1992년에 세워졌으며, 일조화상 실적비는 1944년에 세워졌다. 금학김규현탑성거사공덕비는 1998년에 세워졌다.

원효사 입구 석탑 옆에는 응담화상 기념탑이 있다. 응담화상 기념탑은 응담대사가 1938년에 원효사를 중수한 업적을 기리고자 세운 비이다. 비의 정면에 '응담화상 기념탑(應潭和尙紀念塔)'이라는 탑호가 음각되어 있다. 탑호 좌우에 응담화상의 업적을 기리는 명문을 음각하였다.

원효사의 경내에는 일학화상 실적비(一鶴和尙實蹟碑), 조탑사녀씨명개록지비(造塔士女氏名開錄之碑), 붕남거사지공응현부인정명월김계씨선덕공적비(鵬南居士池公應鉉夫人淨明月金桂氏善德功蹟碑), 정명월김부인계붕남거사지공응현공덕불망비(淨明月金夫人桂鵬南居士池公應鉉功德不忘碑)가 있다. 이 중 일학화상 실적비와 조탑사녀씨명개록지비는 1944년 석가탑과 관음탑을 건립하고 사지를 보수한 사실을 기록하고,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이다. 그리고 붕남거사지공응현부인정명월김계씨선덕공적비와 정명월김부인계붕남거사지공응현공덕불망비는 1944년의 조탑(造塔) 불사뿐만 아니라, 6.25전쟁으로 인하여 황폐해진 원효사의 중건 불사에 대시주(大施主)로 참여한 지응현(池應鉉)·김계(金桂)[법명 정명월(淨明月)] 부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이다.

[특징과 평가]

원효사 부도·비군원효사동부도를 제외하고 모두 조선 후기 이후에 건립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1900년대에 건립되었다. 이들 부도와 비는 대부분 고승의 사리를 모시고 고승의 행적에 대해 기록하였다기보다는 원효사의 불사에 많은 기여를 한 재가자와 고승을 기리기 위한 성격의 건조물이다. 그러므로 원효사 부도·비군을 통하여 근현대 원효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춘곡거사 송화식 사리 부도와 춘곡거사 송화식 부도비는 송화식의 친일 행적 때문에 논란이 되었고, 옛 춘곡거사 송화식 사리 부도 자리에 있는 팔각원당형 부도는 그에 대한 조치로 추정된다. 그 옆에 춘곡거사 송화식 부도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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