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경양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475
한자 光州景陽池
이칭/별칭 경양못,경양방죽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신안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7년 - 「광주 경양지」『명소지명유래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8년 - 「광주 경양지」『무등산』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광주 경양지」『광주의 전설』에 「경양지(1)(2) (3)」으로 수록
관련 지명 경양지|경양방죽 -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신안동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전설|인물전설
주요 등장 인물 김방|이씨|박경양|김씨 부자
모티프 유형 동물보은담|지명유래담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신안동 일대에 있었던 경양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조선 시대 세종 때 만들어졌다는 전라도 광주 지역의 인공 못인 경양지의 이름과 축조(築造)에 관한 지명전설이다.

[내용]

경양지(景陽池)는 조선 세종(世宗) 때 김방(金倣)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경양지는 광주광역시의 계림동신안동 일대에 1967년까지 있었던 인공 못이다. 그런데 1968년에 태봉산(胎封山)[53m]을 허물고, 그 흙으로 경양지를 매립하면서 사라졌다. 경양지 축조에 얽힌 전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전설은 다음과 같다. 광주 서방에 가난하지만 착한 이씨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큰비가 내려 물 위에 떠내려가는 개미집을 건져 주었다. 며칠 후 마당에 쌀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상하게 여겨 아침 일찍 살펴보니 개미 떼가 쌀을 물어다 쌓고 있었다. 누군가 쌀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해 찾아보았지만, 쌀을 잃어버린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이씨는 개미의 보은(報恩)으로 부자가 되었다.

몇 년 뒤, 광주에 가뭄이 들어 휼민창(恤民倉)인 동창(東倉)을 열어 보니 빈 가마니뿐이었다. 이씨가 일도 하지 않고,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났고, 쌀도둑으로 지목되어 관가에 잡혀 왔다. 감사가 이씨에게 부자가 된 이유를 묻자, 이씨는 홍수 때 개미를 살려 준 이야기부터 개미 떼가 쌀을 물어 온 이야기까지 사실대로 말하였다. 감사는 이씨의 착한 마음과 개미 떼의 보은에 감동하여 이씨를 풀어 주었다. 풀려난 이씨는 개미 떼가 물어다 준 쌀이 가뭄이나 재난 때 백성들에게 주는 휼민창의 양곡임을 알고는 광주의 백성들을 위해 못을 파고 제방을 축조하기로 하였다. 이씨는 제방을 축조하는 백성들의 일당을 관청을 대신해 내주는 영세민 구호 사업을 했다.

두 번째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 광주의 효천면에 김씨 부자가 살고 있었다. 김씨 부자는 큰 부자였으나 매우 인색했다. 김씨 부자가 인근 농민들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몇 배로 받아 먹으니 주변의 농민들은 더욱 가난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해에 광주에 큰 흉년이 들었다. 김씨 부자는 주변 백성들의 어려움을 모른 체하며 창고의 문을 굳게 지켰다. 그런데 마을에 가난한 살림에 품팔이로 살아가는 박경양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흉년이 닥치자 홀어머니의 끼니조차 챙기지 못했다. 그러던 박경양은 김씨 부자를 찾아가 곡식을 빌려 달라며 간청하였다. 박경양이 통사정을 해도 김씨 부자가 곡식을 빌려주지 않자, 악담을 내뱉었다. 이에 화가 난 김씨 부자가 담뱃대로 박경양의 머리를 내리쳤고, 박경양이 죽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박경양의 노모도 통곡을 하다가 쓰러져 죽고 말았다. 박씨 모자(母子)가 죽자, 김씨 부자는 초상을 간략하게 치러 주었다. 그런데 다음 날 꿈에 박경양의 노모가 나타나 쥐 떼가 김씨 부자의 창고에 쌓인 쌀을 모조리 파먹을 것이라며 경고했다. 그 다음 날부터 김씨 부자의 창고에 쥐 떼가 나타나 곡식을 갉아 먹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었던 김씨 부자가 고양이를 구해 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날 밤 꿈에 또 박경양의 어머니가 나타나자 김씨 부자는 살려 달라며 빌었다. 그러자 박경양의 어머니는 곳간의 곡식을 풀어 연못을 만들라고 하였다. 김씨 부자가 연못을 만들기 위해 제방 축조 공사를 시작하자 김씨 부자의 병이 사라지고 곳간의 쥐 떼도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제방 축조 공사의 품삯을 받아 흉년을 넘길 수 있었고, 큰 연못으로 농사 지을 물 걱정도 덜었다. 못이 완성되자 마을 사람들은 박경양의 넋을 기려 경양못, 경양방죽이라고 불렀다.

[모티프 분석]

전라도 광주 지역의 경양지를 축조할 때 개미 떼의 도움으로 일꾼들을 먹일 식량을 충당하였다는 제방 축조와 관련된 전설이다. 김방이 무너진 개미집을 구해 줬고, 개미들이 김방에 보은한 이야기이다. 보은담은 거의 대부분이 동물담으로 동물에 빗대어 보은의 논리를 제공한다. 특히, 개미의 보은은 개미가 작지만 부지런하고 힘이 센 특성을 드러내어, 수많은 개미들이 작은 쌀알들을 옮겨 수북이 쌓은 것으로 이야기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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