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01
한자 正月大-
이칭/별칭 상원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서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0년 7월 22일 - 광주 칠석 고싸움놀이 국가무형문화재 제33호 지정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절일로 정해 기리는 음력 1월 15일.

[개설]

정월대보름은 음력 정월 보름, 즉 상원(上元)을 일컫는 말로, 새해 첫 보름이자 만월(滿月)이 뜨는 날이라 정월대보름이라고 부른다. 광주광역시는 물론 전통적으로 농경 생활을 영위하였던 우리나라에서 정월대보름은 무척 중요한 절일(節日)로 여겨서, 일 년 세시풍속의 대부분이 이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농경 사회에서 달은 곧 풍요와 생산력을 상징한다. 달은 여성과 풍요의 원리 또는 지모신(地母神)의 신앙 체계에 들어 있는 것으로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믿었다. 따라서 새해 첫 만월이 뜨는 정월대보름은 이러한 의미에서 만월 제의(滿月祭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편에 수록된 사금갑조(射琴匣條)의 이야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을 통해서 볼 때 정월대보름에 찰밥을 먹고 조상께 차례를 지내는 풍습의 연원이 꽤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21대 비처왕(毗處王)[소지왕(炤知王)] 즉위 10년[488년]에, 왕이 천천정(天泉井)에 행차하는데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었다. 기이하게 여겨 까마귀가 향한 곳을 따라가 보니 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었다. 그때 한 노인이 물속에서 나와 왕께 글을 올렸는데, 겉면에는 '이것을 떼어 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떼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일관이 보더니 "두 사람이란 백성이요, 한 사람은 임금이옵니다." 하였다. 왕이 그럴듯하게 여겨 편지를 열어보니, '사금갑(射琴匣)'이라 적혀 있었다. 이에 왕이 궁으로 들어가 거문고 갑을 향해 활을 쏘니 그곳에서는 승려와 궁주가 몰래 간통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곧 사형되었다. 이때부터 나라 풍속에 정월 상순 돼지·쥐·까마귀 날에는 모든 일을 조심해서 감히 움직이지 않았으며, 15일은 오기일(烏忌日)이라 해서 찰밥으로 제사를 지냈으니 지금도 이를 행하고 있다."

[절차]

광주광역시에서 정월대보름날 아침에는 설과 마찬가지로 차례상을 차려 조상을 모신다. 이날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오곡밥과 약밥 그리고 각종 나물을 들 수 있다. 정월대보름을 '나물 명절'이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나물 음식을 장만하였다. 오곡밥과 각종 나물을 장만하여 조상께 올리고, 마루나 곳간, 외양간 등에도 음식을 차려놓는데 오늘날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촌동 일대에서는 피마자 잎이나 김[海苔]에 약밥을 싸서 볏짚이나 땔나무더미 등에 감추어 두기도 하였다. 정월대보름은 그해 세시풍속의 대부분이 행해지는 날이어서 광주 지역에서도 다양한 민속 행위가 있었는데, 대보름 전날[정월 열나흘]과 당일에 하는 것이 있다.

[대보름 전날에 하는 민속]

정월 열나흘 날에 이루어지는 민속으로는 제웅과 노두 놓기, 복토 훔치기, 액막이 디딜방아 세우기, 샘물 대기, 유지지[유조지(留鳥枝)] 세우기, 잰부닥불 넘기, 논밭둑 불지르기[쥐불], 복조리 걸기 등을 들 수 있다.

제웅과 노두 놓기는 그해 운세가 좋지 않다고 하는 이를 위해 하는 것으로, 짚으로 제웅을 만들어 머릿속에 동전을 넣고 액운이 든 사람의 사주를 써넣어 정월 14일 저녁에 길가나 다리 밑에 버린다. 또한, 노두 놓기는 14일 저녁에 삼재(三災)나 직성(直星)이 든 사람이 가마니나 오쟁이에 모래를 넣어 동네 앞 개울에 사람들이 건널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는 것이다. 재웅과 노두 놓기는 광주 지역에서 근래까지 행해졌던 풍속이다.

복토 훔치기는 정월 14일 밤 부잣집 마당의 흙을 훔쳐다 자기 집 부뚜막에 바르거나 마당에 뿌리면 부잣집의 복이 자신에게 전해져 잘살게 된다는 믿음에서 행해지는 민속이다.

액막이 디딜방아 세우기는 정월 14일 밤 마을 사람들이 이웃 마을의 디딜방아를 몰래 훔쳐다 자기 마을 입구에 Y자형으로 거꾸로 세워고 월경이 묻은 속옷을 입혀 놓으면 그해 마을에 전염병이 돌지 않고 태평해진다고 믿어 행하는 풍속이다.

잰부닥불 넘기는 정월 14일 밤 마당에 생대나무[生竹], 피마자대, 고춧대를 쌓아 놓고 불을 지르는데 이를 '잰부닥불' 또는 '댓불'이라고 부른다. 어린아이들은 잰부닥불을 자기 나이만큼 뛰어넘게 하는데 이렇게 하면 아이가 그해 내내 무병하게 된다고 믿으며, 생대나무가 터지는 요란한 소리에 잡귀·잡신이 모두 달아난다고 한다.

복조리 걸기는 정월 14일 밤에 미리 사놓은 복조리를 큰방의 문 위나 부엌 큰솥 위에 걸어두는 풍속이다. 광주 지역에서는 복조리에 동전 몇 개를 넣어두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재물이 모인다고 믿는다. 조리는 쌀을 이는 것이기에 복조리를 걸어두는 것은 그해 복이 쌀처럼 일어 집안에 들어오게 해달라는 뜻이다.

정월 14일 밤에 논과 밭둑에 불을 지르는데 이를 '쥐불놀이'라고 한다. 본래 정월 첫 쥐날[上子日]에 쥐의 눈을 멀게 하고 없애려고 하는 민속놀이로, 쥐불을 놓으면 그해 병충해가 적어 풍년이 든다고 한다. 또한, 이 불이 잘 타올라서 마을에서도 훤히 보이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정월 14일 밤에는 모든 사람들이 섣달 그믐날 수세(守歲)하듯이 밤새움을 하는데, 이날 잠을 자면 굼벵이가 되거나 머리에 이가 많아지고 눈썹이 희게 된다는 속신 때문이다.

이 밖에 마을에 따라서 정월 14일 밤에 마을 공동 제의인 당산제(堂山祭)를 지내는 곳이 아직도 있다.

[대보름날에 하는 민속]

광주광역시에서는 대보름날인 15일에 더위 팔기, 귀밝이술, 부럼 깨물기, 찰밥 얻어먹기, 까마귀 밥주기와 같은 풍속과 고싸움놀이, 연날리기 등 각종 놀이를 하였다.

보름날 아침에는 더위 팔기를 한다. 해가 뜨기 전 친구를 찾아가 이름을 부르고 그 친구가 대답을 하면 "내 더위"라고 소리친다. 이렇게 하면 친구에게 내 더위를 팔게 되어 그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게 된다고 하며, 더위를 팔러 온 친구의 속셈을 미리 알고 친구가 대답 대신에 "내 더위 네 더위 맞더위"나 "네 할아버지 철무덕" 하고 되받으면 오히려 친구의 더위까지 가져오게 된다고 한다.

대보름날 아침에 청주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귓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를 귀밝이술이라고 한다.

호두나 잣, 은행, 밤 등을 소리 나게 이로 깨물어 먹으면 이가 강해지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정월대보름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오곡밥이 있다. 찰밥에 여러 잡곡을 섞어 지은 밥으로, 보름날 아침 일찍 아이들이 남의 집[세 성받이 집]의 찰밥을 얻어다가 먹으면 그해 병이 없어지고 더위를 안 타게 된다고 한다. 또한, 오곡밥과 나물을 소쿠리에 담아 처마끝이나 담장 위에 놓아두는데 이를 까마귀 밥 주기라고 한다. 까마귀가 와서 먹으면 좋다고 하며, 쌀을 많이 먹으면 논농사가 콩을 많이 먹으면 밭농사가 잘 된다고 점치기도 한다.

새해 첫 보름달이기도 하고 가장 크고 둥근 달이 뜨는 날이라 사람들은 저마다 달을 보며 소원을 빌거나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망월점(望月占)을 치기도 한다. 광주 지역에서는 보름달 주위가 흐리고 붉으면 그해 비가 많이 오고, 그렇지 않으면 가물어 흉년이 든다고 믿는다.

[대보름 민속놀이]

정월대보름 민속놀이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싸움놀이다.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에서 행해지고 있는 '광주 칠석 고싸움놀이'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정월 초순경 아이들의 고샅고싸움놀이를 시작으로 하여 정월 16일에 절정을 이루다 음력 2월 초하루에 끝을 맺는 민속놀이의 하나이다. 또한, 줄다리기연날리기, 윷놀이, 마당밟이 등을 하며 놀았다. 광주 지역에서 윷놀이는 정월대보름에 일가친척이나 마을 사람들이 편을 갈라 즐기는 놀이로, 밤알처럼 작은 윷이라는 뜻의 밤윷을 만들어 놀았다. 밤윷을 간장 종지인 '깍쟁이'에 담아 흔들어 윷을 멍석에 떨구어 논다. 그래서 '깍쟁이 윷'이라고도 부른다.

정월 초삼일 경부터 마을에서 농악대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 또는 마당밟이를 한다. 이 굿을 광주 지역에서는 굿, 매구, 매굿, 걸립, 걸궁 등으로 부른다. 먼저 동네 앞에서 굿을 이루어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에 가서 당산굿을 치고, 이어서 마을의 공동 샘으로 가서 샘굿을 친 다음 집집을 돌아다닌다. 집 대문 앞에서 문굿, 큰방 앞에서 성주굿, 부엌에서 조왕굿, 장독대에서 천룡굿, 곳간에서 곳간굿, 측간에서 측굿을 치고 뜰로 나와 판굿을 친 뒤 다음 집으로 간다. 마당밟이 굿을 쳐주면 주인은 곡식이나 돈을 내놓는데, 이 돈과 곡물은 마을의 공동시설을 보수하거나 짓는데 쓰였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우리 민족은 태음력(太陰曆)을 바탕으로 농경 생활을 영위하였기 때문에 정월대보름을 무척 중요한 절일로 여겼다. 따라서 이날 일 년 세시풍속의 대부분이 행해졌고, 그 내용도 점풍(占農), 기풍(祈豊), 축액(逐厄)과 기복(祈福) 등 무척 다양하여 농경민으로서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달-여성-대지'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달이 초승달에서 점차 둥글어져 보름에 만월이 되었다가 기망(旣望)부터 다시 작아지는 현상을 곡물과 대비시켜 씨를 뿌리고 자라서 영글고 다시 씨로 돌아가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 때문에 우리 민족은 정월대보름은 물론 6월 유두와 7월 백중, 8월 추석 등 만월이 뜨는 보름을 명절로 삼은 것이다. 특히 정월대보름은 새해 첫 보름날이기에 한 해의 소망을 기원하는 만월 제의적 성격의 다양한 풍속이 행해졌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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