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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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弘信 |
영어공식명칭 | Park hongs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박병련 |
출생 시기/일시 | 1373년 - 박홍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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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18년 - 박홍신 사재감정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19년 - 박홍신 좌군병마사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419년 - 박홍신 사망 |
출생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거주|이주지 | 지동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용지리 |
묘소|단소 | 박홍신 묘소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밀양 |
대표 관직 | 사재감정|좌군병마사 |
[정의]
조선 전기 밀양 출신의 무신.
[가계]
박홍신(朴弘信)[1373~1419]의 본관은 밀양이다. 아버지는 삼사좌윤 박천경(朴天卿)이고, 어머니는 검교군기감 위윤경의 딸이다. 아내는 삼사좌윤 민위(閔暐)의 딸이다. 형은 절제사 박언충이다. 얼자 박근생이 있고, 딸이 강호 김숙자에게 시집갔으며, 점필재 김종직 형제가 외손자다.
[활동 사항]
박홍신은 어려서부터 무략이 뛰어나 어린 나이에 검교중랑장으로 산원(散員)이 되고 서경도원수 박실(朴實)의 막부에 소속되었다. 1386년(우왕 12)에 별장(別將)이 되어 형인 박언충(朴彦忠)과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왔다. 조선 개국 후에 갑사(甲士)에 뽑혔고, 1414년(태종 14)에 제물량 만호, 1418년(태종 18)에 중직대부 사재감정이 되었다. 1419년(세종 원년) 황해도를 노략질한 왜구를 징벌하기 위하여 이종무를 삼군도체찰사로 삼아 대마도를 토벌하게 할 때, 바닷길을 잘 안다 하여 좌군병마사가 되어 참전하였다. 형인 박언충도 중군병마사로 참전하였는데, 태종이 용맹과 장수의 재능을 칭찬하며 친히 술을 내려 격려하였다. 좌군절제사 박실의 군대가 상륙하여 왜구와 대치하던 중 복병에 걸려 급박하게 후퇴할 때, 후군이 되어 용맹하게 적을 막다가 전사하였다. 이때 왜적들이 박홍신의 용맹을 두려워하며 ‘상발도(上拔都)’라 하였다. 김종직은 “나의 외조부는 부장을 맡아 다른 사람의 지휘를 받았다. 그러나 위급한 때에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지 않고, 앞장서 범의 아가리에 맞서 사졸들이 살 수 있는 길로 가도록 하였다.”라고 평가하였다.
[묘소]
박홍신의 묘소는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분저곡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