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945
한자 密陽 靈山精舍 石造如來坐像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가례로 233[가례리 1285-1]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김현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3년 4월 17일연표보기 - 밀양 영산정사 석조여래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7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밀양 영산정사 석조여래좌상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장처 영산정사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가례로 233[가례리 1285-1]지도보기
원소재지 영산정사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가례로 233[가례리 1285-1]
성격 불상
재질 석조
소유자 김용대
관리자 김용대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7호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가례리 영산정사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신라 불상.

[개설]

밀양 영산정사 석조여래좌상(密陽靈山精舍石造如來坐像)은 현재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가례리영산정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결가부좌로 앉아 왼손에는 약함(藥函)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상임을 알 수 있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아픈 곳을 치료하여 준다는 의미로 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來) 또는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 불리는 부처이다. 밀양 영산정사 석조여래좌상은 2003년 4월 17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7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형태]

밀양 영산정사 석조여래좌상은 오랜 풍화로 머리 부분의 부식과 마모가 심하여 후대에 보수되었지만, 연화좌(蓮華座)에 결가부좌하여 앉아 있는 약사여래이다. 어깨와 무릎의 폭이 넓어 균형 잡힌 안정적인 자세에 당당한 모습이다. 머리에는 둥근 육계(肉髻)가 있고, 나발(螺髮)은 마모되었다. 얼굴은 턱이 둥근 방형이며, 코가 매우 크게 뭉툭하게 표현되어 있다. 목에는 삼도가 있다. 오른쪽 수인은 외무시인(施無畏印)으로,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끊임없이 계속되었던 전쟁과 가뭄, 기근 속에서 평화를 바라는 백성들의 갈망을 신앙 형태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법의는 등 뒤에서 시작하여 몸 전체를 휘감고 있는 통견(通絹衣)이며, 가사(袈裟)는 비교적 양호하게 나타나 있다. 오른팔에 편삼을 입고 오른쪽 어깨를 덮은 대의가 복부를 돌아 그 끝자락이 왼쪽 어깨 뒤로 걸쳐 있으며 가슴에는 비스듬하게 흘러내린 승각기(僧脚崎)를 입었다. 오랜 세월의 풍화로 옷 주름의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불상 뒷면에 조각되어 있는 통견은 앞면보다 더 사실적으로 남아 있다. 특히 오른쪽 상단부에는 가사와 편삼이 교차하는 꼬임이 아주 잘 나타나 있다.

뒷면의 등 중앙에 뚫린 작은 구멍은 광배를 부착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대좌도 파손되어 현재 상대와 중대의 윗면만 조금 남아 있고, 중대는 팔각형의 연꽃 모양의 앙련(仰蓮) 형태로 통일신라 때인 8~9세기에 유행하였던 형식이다. 또 약함의 모양이 독특한데 구형(球形)의 작은 옹기에 뚜껑이 있는 보기 드문 양식이다.

[의의와 평가]

밀양 영산정사 석조여래좌상은 삼국 통일 직후인 7세기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고려 초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여래좌상의 기본 양식을 갖추고 있다. 특히 통견의 조각 수법이 통일신라의 특징을 지닌다. 통일신라 하대인 9세기의 약사여래상의 도상과 사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 문명대, 『한국조각사』(열화당, 1980)
  •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 밀양문화원(http://miryang.kcc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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