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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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隅五里山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5리 |
집필자 | 김덕원 |
의례 장소 | 신사당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 5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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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마을 신앙|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0월 중 택일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 5리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송우 5리 산신제 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국립 민속 박물관[1967년 조사], 포천 군지 편찬 위원회[1995년 조사], 국민 대학교[1999년 조사], 포천 문화원[2009년 조사] 등의 기관이나 단체가 여러 차례 조사하였다. 내용에서 다소 상이한 부분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원인은 조사 당시의 시기적인 차이와 함께 조사자와 제보자의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내용이 다소 상이하더라도 자료 수집과 보존의 차원에서 각각의 조사 기관 및 단체를 구별하여 정리하였다.
송우 5리 산신제 는 매년 음력 10월 중에 마을 서쪽의 신사당에서 산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1998년 추산 초등학교가 개교되면서 산제 터가 없어지고 갑자기 도시화가 된 영향으로 산제도 중지되고 현재에 이르렀다[포천 문화원].
[신당/신체의 형태]
부락 정서쪽에 신사당이라는 4평 내외의 초가로 된 당집이 있는데, 내부에는 제단만 있다. 제신(祭神)은 산신(山神)으로 부락을 수호하고 있으며, 신목(神木)은 없다[국립 민속 박물관]. 산제 터는 당목(堂木)이 있는 곳에 제장(祭場)을 마련하였으며, 당산나무에도 치성을 드렸다는 조사 내용도 있다[포천 군지 편찬 위원회]. 제당의 형태는 당산나무이다[국민 대학교]. 마을 서쪽의 현재의 추산 초등학교 운동장 중앙에 제단으로 초가의 당집이 있었고, 이 외에 산제 터는 당목이 있는 곳에 제장을 마련하였다는 조사 내용도 있다[포천 문화원].
[절차]
산신제는 매년 음력 10월 중에 지낸다. 제주(祭主)는 일명 당산주(堂山主)라고도 하는데, 30대 이상의 부정(不淨)이 없는 남자 후보자 중에서 생지지덕을 가리며 지적된 사람을 선임한다. 그리고 신사계장 및 각 가구주 다수가 참여하는데, 이들은 금주하며 부정한 것을 안 보도록 해야 한다. 제의는 상당(上堂) 신사당에서 하며, 제수(祭需)는 돼지고기와 백병(白餠), 과실과 술 등을 올린다[국립 민속 박물관].
산신제는 가을 추수 후 날짜를 정하며, 제관(祭官)은 간지에 맞추어 결정되었다. 제수는 술을 제조하고 돼지 한 마리와 과일을 사용하였다[포천 군지 편찬 위원회].
산신제는 추수 후에 택일하여 지내고, 제관은 1명이다. 제수는 통돼지와 삼색과실, 그리고 술을 올린다[국민 대학교].
산신제는 음력 10월에 택일하며, 제주는 제관 1명, 축관(祝官) 1명, 집사자(執事者) 3명인데, 30세 이상의 남자로 생기복덕한 사람으로 선임하고, 금기 사항을 엄수토록 하였다. 산제 중 금기 사항의 내용은 첫째, 부정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외출을 삼가고 근신한다. 둘째, 부부 관계를 금한다. 셋째, 개고기나 비린 생선을 먹지 않는다. 넷째, 음주 가무나 육식을 금하는 일 등 크게 네 가지이다. 제수는 돼지머리, 삼색과실과 백병, 그리고 술 등을 올리는데, 1960년대까지는 소를 잡아서 올렸다고 한다. 이 외에 산신제는 가을 추수 후 날짜를 정하며, 제관은 간지에 맞추어 결정되었다. 제수는 술을 제조하고 돼지 한 마리와 과일을 사용하였다는 다른 조사 내용도 있다[포천 문화원].
[부대 행사]
산신제가 끝난 후에 음복하고 동네 회의를 하였다[국립 민속 박물관]. 산제를 올리고 마을 잔치를 하였다[포천 문화원].
[현황]
산신제의 비용은 각 호에서 백미(白米) 또는 금전(金錢)으로 충당하였는데, 1회에 1천 원 내외로 하였다[국립 민속 박물관]. 산신제의 비용은 각 호에서 추렴하여 산제를 올리고 마을 잔치로 분배하였다. 이 외에 제의 비용은 대략 20~30만 원 소요되는데, 화주가 책임진다는 내용도 있다[포천 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