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산삼과 관련된 세 가지 이야기. 2007년 울릉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릉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산삼은 아주 먼 옛날부터 불로장생의 약 또는 불사초 등으로 불렸으며, 그 약효는 실로 다른 약에 비할 바 못 되는 명약 중의 명약으로 자타(自他)가 이 약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울릉도에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산삼이 유명하...
조선 후기 울릉도에 거주를 금하고 관리를 파견하여 주기적으로 순찰하도록 한 정책. 1693년(숙종 19)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안용복(安龍福) 등 동래와 울산 어부 40명이 울릉도에 출어한 일본 어부와 충돌하였다. 그 과정에서 안용복 등은 일본 어부들에 의해 오키시마[隱岐島]으로 납치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안용복은 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 들어가 울릉도와 자산도(子山島)[현...
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릉군의 역사. 울릉도의 경우 일제강점기인 1917년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처음 유물의 채집이 있은 이후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 등의 조사가 있었다. 해방 후 국립박물관에 의해 울릉도의 고고학적 조사가 실시되었다. 1947년과 1957년에 김원룡 등에 의해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1963년에 김정기에 의해 보충 조사가 실시되어...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울릉도 역사. 울릉도는 고려 말 왜구 때문에 무인도가 되었으나, 조선 초 이래 육지의 백성들이 계속 건너가 살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울진현(蔚珍縣)에 소속되었지만, 이곳이 왜구의 거점이 된다고 하여 조선 전기에는 쇄환정책(刷還政策), 조선 후기에는 수토정책(搜討政策)을 시행하였다. 그리하여 본토로부터 울릉도에 들어간...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의회는 1905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시마네현 오키군[隱岐郡] 오키노시마[隱岐の島]에 편입한 지 백 주년이 되는 2005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竹島]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 제정을 강행하여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그후 “독도를 돌려 달라”는 내용의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
조선 후기 울릉도 수토를 정지해 줄 것을 조정에 요청한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계량(季良). 승지 조희보(趙希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조형(趙珩)이고 아버지는 조상개(趙相槪), 어머니는 오상한(吳詳漢)의 딸이다. 경종이 승하하고 영조가 즉위한 뒤 응교(應敎)·사간(司諫)·교리(校理)를 지내면서 불합리한 조정 대신을 탄핵하기도 하였다. 1727년(영조 3)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