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
-
조선 전기 울릉도 입도인(入島人). 1439년(세종 21) 형조에서 아뢰기를, “김범(金凡)·귀생 등이 함부로 무릉도(茂陵島)에 들어가 살았사오니, 율에 의하여 교형에 처하옵소서” 하니, 조정에서 그대로 따랐다고 전해진다....
-
조선 전기 울릉도 입도인(入島人). 1439년(세종 21) 형조에서 아뢰기를, “김범·귀생(貴生) 등이 함부로 무릉도(茂陵島)에 들어가 살았사오니, 율에 의하여 교형에 처하옵소서” 하니, 조정에서 그대로 따랐다고 전해진다....
-
조선 전기 울릉도 입도인(入島人). 1438년(세종 20) 형조에서 아뢰기를 “김안이 수모(首謀)가 되어 일을 꾀하다 무릉도(茂陵島)로 도망해 들어갔사오니, 율에 의해 교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 밖의 종범(從犯)은 모두 경성(鏡城)으로 옮길 것을 청하옵니다”하니, 조정에서 그대로 따랐다고 전해진다....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토지를 이용하여 생산물을 얻는 활동. 울릉도에는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다. 이들은 다른 선사 시대 사람들처럼 수렵과 어로로 생계를 유지해 나갔으며, 발달한 단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농업 활동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유물로서 갈돌과 갈판, 무문토기가 발견되고 있어 이러한 농업 활동을 추측할 수 있다. 울릉도는 산지가 많아 다른 육지...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주요 섬으로는 동도와 서도가 있고 그 외 89개의 돌섬과 암초들로 이루어져 있다. 삼국시대에는 우산국(于山國)이라는 소국으로 존재하다가, 고려시대에는 울릉도(鬱陵島)·울릉도(蔚陵島)·우릉도(芋陵島)·저릉도(苧陵島)·우릉도(迂陵島)·우릉도(羽陵島)·무릉도(武陵島)·우산국·우릉성(羽陵城) 등으로 명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우산도(于山島...
-
조선 전기 울릉도에 사람이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해금정책의 기초를 마련한 문신. 1400년(정종 2) 좌간의(左諫議)를 거쳐 1409년(태종 9) 우간의(右諫議)를 지냈다. 1411~1413년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이듬해 인녕부윤(仁寧府尹) 재직 당시에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호조판서로 재직하고 있던 1416년(태종 16) 박습은 태종에게 자신이 강원도관찰사로...
-
조선 전기 유산국도[현재의 울릉도]에서 본토로 들어온 인물. 『태종실록(太宗實錄)』 권 23 기사조(己巳條)에 의하면 강원도관찰사의 보고에 의해 의정부에서 백가물 등 유산국도(流山國島) 사람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하여 의논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유산국도 사람 백가물 등 12명이 고성(高城) 어라진(於羅津)에 정박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무릉도(武陵島)에서 생장하였는데, 그 섬 안...
-
조선 전기 무릉도[지금의 울릉도]에 관한 일을 담당한 문신. 성종은 강원도관찰사 성순조에게 영안도(永安道)에 사는 백성들 가운데 몰래 무릉도(茂陵島)에 들어간 자를 색출하여 체포하게 하였다. 또한 성순조에게 세종 때에 울릉도에 왕래한 자를 찾아 물어보고 울릉도에 파견할 원행사를 모집함과 아울러 선박들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성종은 이계손이 보고한 삼봉도(三峯島)가 아닌 무...
-
경상북도 울릉군의 옛 지명 중 하나. 『고려사』를 살펴보면 울릉도의 옛 지명은 우릉도(芋陵島, 羽陵島), 우산국(于山國), 우릉성(羽陵城), 울릉도(蔚陵島, 鬱陵島), 무릉도(武陵島) 등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삼국시대에 울릉도는 우산국이라 불렸으나 고려가 새로운 통일 왕조로 등장한 후, 울릉도는 고려 정부로부터 우산국, 혹은 우릉성으로 불렸다. 그런데 『고려사』에서 우산국이라는 표...
-
독도는 동도(東島)와 서도(西島) 및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예전에는 삼봉도(三峰島)·가지도(可支島)·우산도(于山島) 등으로도 불렸는데, 울릉도 개척 당시 입도한 주민들이 돌섬으로 부르다가 이후 돍섬으로 변하였고, 다시 독섬으로 변하였다. 독섬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 독도(獨島)이다. 프랑스와 유럽 같은 나라에서는 독도를 발견한 배의 이름을...
-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하는 섬. 512년(지증왕 13) 하슬라주 군주인 이사부가 우산국(宇山國)을 정벌하였다는 기사가 울릉도의 지명에 관한 최초의 언급이다. 그 후 930년(태조 13)에 우릉도(芋陵島)에서 방물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후 고려 현종 때까지 우산국이란 지명 만이 보인다. 현종 때를 마지막으로 우산국이란 지명은 보이지 않고, 덕종 때 우릉성(羽陵城), 인종 때에...
-
조선 전기 무릉도에 들어갈 때 표류한 수군. 1425년(세종 7) 무릉도(茂陵島)에 들어갈 때 바람에 표류하였던 평해(平海) 사람 장을부(張乙夫) 등이 일본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처음에 수군 46인이 한 배에 타고 안무사(安撫使) 김인우(金麟雨)를 수행하여 무릉도를 향해 갔다가, 갑자기 태풍이 일어나 배가 부서지면서 같은 배에 탔던 36인은 다 익사하고, 우리들 10인은 작은 배...
-
조선 전기의 대마도도주. 아들 종정성(宗貞盛)을 두었다. 1407년(태종 7)에 대마도수호(對馬島守護) 종정무(宗貞茂)가 다이라도오젠[平道全]을 파견하여 토물(土物)을 바치고, 왜구에게 잡혀갔던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또한 무릉도(武陵島)[현 울릉도]에 여러 촌락(村落)을 거느리고 가서 옮겨 살기를 청하였으나 태종으로부터 거절당하였다....
-
조선 전기 울릉도 쇄출(刷出) 정책에 반대한 문신. 안무사(按撫使) 김인우가 울릉도로부터 1417년 2월 5일 귀환하여 복명하자, 태종은 우의정 한상경에게 명하여 육조의 대신들과 대간들을 소집해서 어전회의를 열어 울릉도 거주민의 육지 이주에 대한 가부를 의논하게 하였다. 이 어전회의에서는 육지 이주에 반대하는 다수의 의견과 속히 이주시키자는 공조판서 황희의 주장이 엇갈렸는데 태종은...
-
경상북도 울릉군 지역에서 일정하게 흐르는 바닷물의 흐름. 동해 내에서 한국 동부 연안을 따라 이동하는 해류로는 대양의 아열대 및 아한대 순환의 서안경계류에 해당하는 동한난류와 북한한류가 존재하며 동해 북부 해역에서는 심층수가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동해에는 난수성 와류, 해류의 사행 등 중규모 해양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한난류라 하는 것은 북한한류와...
-
조선 전기 울릉도 해금정책 확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尨村). 황석부(黃石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균비(黃均庇)이고 아버지는 자헌대부 판강릉대도호부사 황군서(黃君瑞)이며 어머니는 김우(金祐)의 딸이다. 개성 가조리(可助里)에서 출생하였다. 황희는 울릉도·독도 지역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