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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441
한자 先史遺蹟-遺物
영어의미역 Relics and Remains of Prehistoric Time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집필자 이희돈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에 있는 역사시대 이전 사람들의 생활 흔적과 물건.

[개설]

현재까지 울릉도 내에서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적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역사시대의 고분군들이 비교적 울릉도 전역에 고르게 분포하고 있고 남서리·남양리처럼 매우 가파른 지형에까지 확대되어 있는 데 비해,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유적 및 무문토기 산포지는 넓고 완만하며 전면이 바다 쪽으로 터 있는 지역에 입지하고 있다.

현포리 지석묘 유적은 전망이 좋은 산마루 중턱에 있어 아래쪽이 완전히 조망되는 지리적 입지를 갖추고 있다. 지석묘와 집자리 유적들이 모두 존재했음이 추정되며 결과적으로 현포리 일대는 무문토기인들의 중요한 근거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지석묘가 나오는 저동리에서 무문토기 산포지가 찾아지지 않은 것은 이곳이 취락이 발달하여 유적들이 파괴되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하여 후대로 들어가 울릉도내에서 사람들의 거주가 늘어남에 따라 고분군의 축조는 점차 사동리·남서리·남양리 등지로 확대되어 갔을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

울릉읍 저동리 내수전 지석묘는 저동3리 내수전 173번지 김철환의 밭 일대에 위치하는데, 약간 경사진 면에 축조되었다. 전형적인 남방식 지석묘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개석으로는 두터운 장방형의 화강암을 사용하였는데, 두께는 1.53m이다. 장축은 동서 방향이고, 규모는 동서 길이 5.0m, 남북 길이 4.2m이다. 개석의 동쪽에는 1개의 지석이 고여 있는데, 크기는 0.97x0.63㎝ 정도 된다. 성혈(性穴)은 관찰되지 않는다.

현포리 지석묘는 현포1리 현포초등학교 뒤편 약 l00m 떨어진 완만한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포리 고분군으로부터는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태하리에서 현포령을 넘어 현포리로 넘어오면 지석묘가 도로의 좌측에 보인다. 이 지점은 아래의 현포리 고분군 일대가 잘 조망되는 곳이다.

이 지석묘는 남방식 지석묘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개석은 두께가 1.0m 정도 되는 타원형의 화강암을 사용하였다. 개석의 장축 방향은 남북이며, 길이는 남북 3.5m, 동서 2.7m이다. 1개의 지석이 약간 이탈되어 드러났는데, 크기는 0.5x0.3m 정도 된다. 개석 위에는 직경 3.5㎝의 작은 성혈 1개가 보인다.

남서리 지석묘는 남서리 고분군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15-14호분 북편, 즉 고분군 가장 위쪽에서 1기가 발견되었다. 고인돌이 축조된 지점은 남서리 계곡 전체와 앞의 바다를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개석은 큰 장방형의 화강암을 사용하였는데, 그 규모는 길이 4.2m, 폭 4.0m, 두께 약 2.0m 정도 된다. 개석 밑에는 지석을 고인 흔적이 보이며, 개석의 상면에는 지름 3.0㎝ 정도의 성혈이 9개 새겨져 있다.

[유물]

현포리 고분군 및 토기 산포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비록 적은 양이기는 하지만 무문토기 및 붉은간토기편이 발견되었다. 무문토기 산포지는 현포리 고분군 전역에 걸쳐 있다. 무문토기의 태토는 굵은 사립이 많이 섞여 거칠고 표면의 박락이 심하다. 함께 채집된 구연부편은 직립하고 있어 적색연질토기와는 구별이 된다.

이러한 무문토기편들은 외관상 육안으로 관찰하였을 때 신라시대의 적색연질토기와 구별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무문토기편들을 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 무문토기와 붉은간토기로 밝혀졌으며, 태토 분석 결과 현지에서 제작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무문토기가 발견된 지역에 지석묘 1기가 있고, 토기 외에 2점의 석기를 발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현포리 일대는 무문토기인들의 중요한 근거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석기로는 갈돌[碾石棒] 조각 및 갈돌판[碾石]이 각각 1점 발견되었다. 갈돌편은 화강암제로 반파되어 절반 정도만 남아 있다. 아래 부분은 오랜 사용으로 인하여 편평하게 갈려 있다. 석봉의 끝부분에는 으깨진 자국이 보이는데, 이는 석봉이 반파된 후 망치돌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이라고 생각된다. 남아 있는 부분은 길이 12.5㎝, 폭 5.9㎝, 두께 3.7㎝이다.

갈돌판은 현포리 지석묘 뒤편 754번지 전태완 소유의 밭에서 발견하였다. 형태는 대략 타원형을 띠고 있는데, 길이 56㎝, 폭 35㎝, 두께 12㎝로 대형에 속한다. 윗면의 가운데 부분은 오랜 사용으로 인하여 움푹 파여 있으며, 곳곳에 마연된 흔적이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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