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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어잉다랑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561
한자 夫於仍多郞
영어음역 Bueoingdar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우산국 성주의 아들
출신지 울릉도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대표관직 우산국 성주

[정의]

고려 전기 우산국 성주의 아들.

[개설]

『고려사(高麗史)』에 기록에 의하면 우산국은 고려 전기 1018년(현종 9) 경에 여진족의 침입으로 급격히 쇠퇴하였으며, 1019년(현종 10)에 여진족 침입 당시 본토로 피난했던 우산국 사람들을 다시 우산국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우산국의 피폐해진 생활여건은 쉽게 회복되지 않아 1022년(현종 13)에 본토에 피난했던 우산국 사람들을 예주[현 영해 지역, 또는 당시 평해·영덕·영양 등지를 관할하는 지방행정 조직체 방어사(防禦使) 예주(禮州)의 관내]에 정착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고 한다.

[활동사항]

1032년(덕종 1)에 우산국 성주의 아들인 부어잉다랑(夫於仍多郞)은 고려 조정에 조공을 바쳤다. 『고려사』에는 우릉성주(羽陵城主)가 그의 아들 부어잉다랑을 보내와서 토산물을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930년(태조 13)에 태조우산국 토두(土頭)에게 관등 제12위의 정6품 정조(正朝)를 제수한 이후 우산국 성주를 세습 관직으로 인정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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