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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판도소속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563
한자 竹島版圖所屬考
영어음역 Jukdopandososokgo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외국문헌
저자 기타자와 미사나리
저술연도/일시 1881년 8월 20일연표보기

[정의]

1881년(고종 18) 기타자와 미사나리가 저술한 독도 기록이 있는 일본 문헌.

[개설]

1876년(고종 13) 조선의 개항을 전후한 시기부터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불법 입도하여 삼림 재목을 도벌해가면서 불법을 저지르자 조선 정부는 1881년(고종 18) 5월 일본 외무성에 항의 문서를 보내어 일본인들의 울릉도에의 도항과 불법 입도의 금지 조치를 요구하였다. 일본 외무성은 이에 대한 대답을 조선 정부에 즉각 보내지 않고 기타자와 미사나리[北澤正誠]에게 울릉도 영유권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

[편찬/발간경위]

기타자와 미사나리는 일본 외무성의 위촉을 받아 울릉도의 영유권을 조사한 자로서 광범위한 문헌조사를 통해 『죽도고증(竹島考證)』을 먼저 만들고, 이것을 간단히 요약하여 『죽도판도소속고(竹島版圖所屬考)』라는 제목으로 1881년(고종 18) 양력 8월 20일에 일본 외무성에 제출하였다.

[구성/내용]

기타자와 미사나리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은 인정하면서도,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버려두었기 때문에 일본이 그 땅을 취하여도 된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기타자와 세이세이의 보고서를 토대로 일본인의 울릉도 불법 벌채를 금지하겠다는 공문을 조선 정부에 보냈다.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울릉도가 조선의 섬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문록이래(文祿以來)[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문록·경장의 역이라 칭한다] 버려두고 거두지 않았다. 일본 사람들이 그 빈 땅에 가서 살았다. 즉 일본 땅인 것이다. 그 옛날에 두 나라의 경계가 항상 그대로였겠는가. 그 땅을 내가 취하면 내 땅이 되고, 버리면 다른 사람의 땅이 된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조선이 80년간 버려두고 거두지 않아서 일본의 땅이 된 것을 1693년(숙종 19) 안용복 사건 후에 한국의 땅이라고 돌려준 것은 당시 일본정부가 쇄국정책을 취한 탓이라고 하면서 1690년대 일본정부의 정책을 비판하였다.

[의의와 평가]

기타자와 미사나리의 논리는 1905년에 일본이 독도를 무주지(無主地)라고 하여 자국의 영토라고 편입시키는 논리를 제공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9.30 저자 수정 <변경 전> 기타자와 세이세이 <변경 후> 기타자와 마사나리
이용자 의견
이** 기타자와 마사나리.
세이세이가 아닙니다. 이 글을 인용한 사람들이 세이세이라고 잘못 적는 사람들이 많네요.
  • 답변
  • 디지털울릉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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