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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604
한자 異斯夫
영어음역 Isabu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박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장군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대표관직 병부령

[정의]

512년 우산국을 점령한 신라의 장군.

[개설]

내물마립간의 4대손으로 지증왕 이래 법흥왕, 진흥왕 대까지 활약한 장군이자 정치가이다.

[활동사항]

505년(지증왕 6) 신라에서는 군현제가 실시되어 최초로 실직주(悉直州)가 설치되었다. 이때 이사부는 실직주의 군주(軍主)가 되었으며, 512년에는 우산국(于山國)[지금의 울릉도]을 점령하였다. 당시 우산국은 지리적인 이유로 신라에 귀복하지 않고 있었으며, 주민들이 사나워서 힘으로는 정복할 수가 없었다. 이에 이사부는 계교로써 항복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나무로 사자(獅子)를 많이 만들어 전선에 가득 싣고 우산국 해안을 내왕하면서 항복하지 않으면 맹수를 풀어 밟아 죽이겠다고 위협하니, 그들이 마침내 항복하고 말았다. 541년(진흥왕 2)에 이사부는 병부령(兵部令)이 되었다. 당시 병부령은 단순한 병부의 책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등·시중을 겸할 수 있는 최고 요직의 하나였다. 그 뒤 562년(진흥왕 23)까지 정치·군사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545년 왕에게 국사 편찬의 필요성을 역설하자 왕은 거칠부(居柒夫) 등에게 명하여 『국사(國史)』를 편찬하게 하였다. 550년 1월 백제가 고구려의 도살성(道薩城)을 함락하고, 3월에는 고구려가 백제의 금현성(金峴城)을 점령하는 등 양국의 충돌이 계속되었다. 이 틈을 타 이사부는 이 두 곳을 공략하여 점령한 뒤, 성을 증축하고 1,000명의 군사를 주둔시켰다. 이어 금현성 탈환을 위해 재차 침입한 고구려의 군대를 다시 격파하였다. 근래에 발견된 단양신라적성비(丹陽新羅赤城碑)에 의하면, 549년 전후에 이찬 이사부는 파진찬 두미(豆彌)와 아찬 비차부(比次夫)·무력(武力)[김유신의 할아버지] 등을 이끌고 한강 상류지방을 경략하여 신라 영토를 크게 넓혔다고 한다.

562년 9월 가야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사부는 왕명을 받고 출정하였다. 이 때에 사다함(斯多含)이 5,000기병을 이끌고 전단문(栴檀門)에 치달아 백기를 세우니 성중의 모든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를 본 이사부가 돌격하여 성을 함락시켰다. 이를 계기로 신라는 대가야를 멸망시켜 낙동강 하류지역을 완전히 장악하였으며, 이들과 연결된 왜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제거할 수 있었다. 이후 이사부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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