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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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寧海朴氏 |
영어공식명칭 | Yeonghae-Park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기 |
본관 | 영해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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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입향지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리 |
성씨 시조 | 박제상(朴堤上) |
입향 시조 | 박명천(朴命天)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박제상을 시조로 하고 박명천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
[개설]
영해박씨(寧海朴氏)는 신라 파사왕의 5세손인 박제상(朴堤上)을 시조로 하고 박제상의 26세손 박명천(朴命天)를 입향조로 하는 성씨이다.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일대에 세거했으나, 현재 영덕 지역에 남아 있는 후손은 그리 많지 않다.
[연원]
중시조 박명천은 고려 조에서 공을 세우고 삼중대광 벽상공신 예원군(三重大匡壁上功臣禮原君)에 봉해졌다. 이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영해로 삼았는데, 예원은 영해의 옛 지명이다.
[입향 경위]
박명천은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리에 처음 정착하여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박명천의 8세손인 박송비(朴松庇)[?~1278]는 고려 고종 때 무신정권의 타도에 공을 세워 위사공신(衛社功臣)이 되었는데, 고종은 예주(禮州)가 박송비의 고향이라 하여 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로 승격시키고 재차 예주목으로 승격시켰다. 예주는 영해의 옛 지명이다.
박명천의 9세손인 박세통(朴世通)[1187~1263]과 아들 박홍무(朴洪茂)[1227~1285], 손자 박감(朴瑊)[1256~1337]이 모두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내 3대 문하시중 가문으로 명성을 얻었다. 대흥백씨 입향조인 백견(白堅)은 박감의 사위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 초 영해박씨의 막강한 세도를 염려하여 조정에서 야성박씨 박종문 장군에게 이를 적절하게 처리하도록 명하였는데, 박종문은 영해박씨의 실세들을 살상하지 아니하고 울령(鬱嶺) 밖으로 옮겨 살도록 조처한 후 창수면 인량리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서 영덕군 지역에 거주하는 영해박씨가 드물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재 영덕 지역에 거주하는 영해박씨는 조선 성종조에 봉화현감을 지낸 추암(秋庵) 박우(朴愚)[?~?]의 후손들이다
[현황]
영해박씨는 영해를 관향으로 하고, 병곡면 일대에 선조들의 묘소와 서원 등 유적이 있으나 영덕군 관내에 거주하는 종원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2015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영덕군 관내에 248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관련 유적]
박제상·박세통·박홍무·박감·박응천의 위패를 모신 운계서원(雲溪書院)과 삼시중공신도비(三侍中公神道碑)가 병곡면 거무역리에 있다. 운계서원은 1824년(순조 24)에 병곡면 영리에 창건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된 뒤 초석만 남아 있다가 1987년에 거무역 마을 앞에 사당과 정자만 복원하였다. 박응천(朴應天)은 임진왜란 때 영해향교에 봉안된 성현의 위패를 지켜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