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3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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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午泉里金海裵氏集姓村 |
영어공식명칭 | Single-Clan Village of Gimhae-Bae Clan in Ocheon-r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오천1리 오일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기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오천리에 있는 김해 배씨 집성촌.
[개설]
김해배씨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관향으로 하고, 배원룡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오천리의 김해배씨는 15세기 초에 영덕지현사(盈德知縣事)를 지낸 야은(野隱) 배담(裵湛)[1386~1462]이 임기를 마치고 오일마을에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여 김해배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입지]
지품면 오천1리 오일마을은 영덕군청 소재지에서 안동으로 가는 국도 제34호선의 약 8㎞ 지점에 있는 도로변 마을이다. 마을 남쪽으로 오십천이 반월형으로 돌아 흐르고, 강변에 송림이 우거져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유원지가 되고 있다. 영덕복숭아마을로 지정되어 있으며, 영덕복숭아조합 농산물집하장이 있어 영덕복숭아 생산의 중심마을이 되고 있다.
[명칭 유래]
오천리는 과거 송대(松臺), 오일(五逸), 오일(午日) 등으로 불렸다. 1619년에 김해배씨 배련(裵璉)이 마을을 정비하고 마을 이름을 송대라 하였으며, 그 후 1710년경 배씨가문의 아들 5형제가 마을 앞에 보(洑)를 개척하고 5은일(五隱逸)이 속세를 떠나 은거하는 마을이란 의미로 오일리(五逸里)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 북면에 속하여 오일리(五逸里)라 하였고, 1833년경부터는 오일리(午日里)라 표기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을 단행할 때 오일동과 김천동(金泉洞)[현재 오천2리]을 통합하여 오천동(午泉洞)이라 하고 영덕면에 편입하였다가 1934년에 지품면에 편입하였다. 1949년에 다시 분동하여 김천동은 오천2리가 되고, 오일리는 오천1리가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오천리 김해배씨의 입촌조는 야은 배담이다. 배담은 1427년(세종 9)에 영덕지현사로 부임하여 임기를 마치고 군자동[현재 삼화리 부근]에 기거하였는데 수해가 잦아 오일리로 옮겼다고 한다. 배담이 오천리 오일에 정착한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많은 유학자를 배출하였다. 영덕지현사는 영덕현의 수령이다. 김해배씨는 분성배씨(盆城裵氏)라고도 한다.
[현황]
『영덕향토사』[1992]에 의하면 당시 오천1리에는 총 59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김해배씨가 42가구로 전체의 7할에 이르고 있다. 배씨 외에는 김해김씨 5가구, 파평윤씨 3가구, 기타 9가구로 나타났다. 2011년 10월 기준으로는 전체 63가구 중 김해배씨가 25가구로 배씨의 가구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배씨 이외에는 경주김씨 14가구, 경주이씨 5가구, 경주손씨 3가구, 밀양박씨 3가구, 기타 성씨 13가구 등으로 성씨 구성이 다양하다. 이로 미루어 이 마을은 인구 유동이 매우 심한 마을로 보인다. 오천1리에 야은공유허비(野隱公遺墟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