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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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陶谷里慶州崔氏集姓村 |
영어공식명칭 | Single-Clan Village of Gyeongju-Choi Clan in Dogok-ri |
이칭/별칭 | 집성촌,도곡리,복두미,망골,경주최씨,최간석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2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기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있는 경주 최씨 집성촌.
[개설]
경주최씨는 경상북도 경주시를 관향으로 하고, 최치원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도곡리의 경주최씨는 임진왜란 때 최간석(崔諫碩)[생몰연대 미상]이 입촌하여 정착한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입지]
축산면 도곡2리는 도곡1리의 서북쪽 1.5㎞ 지점에 있는 복두미[福坪]와 복두미의 동북쪽 1㎞ 지점에 있는 망골[望谷]의 두 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도곡2리와 도곡1리 사이에 동해대로[국도 제7호선]가 지나간다. 복두미 마을 앞 축산천과 동해대로 사이의 삼각지에는 넓은 복평들이 펼쳐져 있다.
[명칭 유래]
경주최씨 집성촌이 자리한 복두미란 마을 이름은 16세기 말에 영해박씨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고 넓은 들을 조성하여 복두산의 '복' 자를 따서 복평(福坪)이라 부른 데서 연유한다. 복두미는 효촌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애틋한 사연이 있다. 신돌석 장군의 휘하 참모장인 박수찬이 왜병에게 체포되어 총살당할 위기에 처하였는데 7살 어린 나이의 아들이 아버지 대신 자기가 죽기를 간청하자 왜병도 감복하여 부자를 방면하여 주었다고 한다. 이에 마을 이름을 효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마을은 구한말 의병대장인 신돌석이 태어난 마을이다.
망골은 일명 송현이라 하는데 영해부에 들어가는 초입의 조그만 고개로 신관이 부임할 때 영해부의 관리들이 망골에 와서 신관을 맞이하였다고 하여 망현(望峴) 또는 망곡(望谷)이라 하였다. 망골은 옹기를 굽던 가마터가 있던 마을로 도곡(陶谷)이란 지명의 바탕이 되었다. 망골의 동쪽 국도 제7호선 건너편에는 의병대장 신돌석장군 유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영해부에 속했으며, 대한제국 시대에는 영해군 남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번계와 병합하여 도곡동이라 칭하고 축산면에 편입하였으며, 1945년에 도곡1동과 도곡2동으로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성 및 변천]
16세기 말에 영해박씨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고, 그 후 김해김씨가 입주하여 이 마을을 ‘박씨 터전에 김씨 골목’이라 칭하게 되었다. 경주최씨로 이 마을에 처음 입촌한 인물은 임진왜란 때 입주한 최간석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간석의 인적 사항과 입촌 경위는 자세히 알 수가 없으나 후손들이 계속 세거하여 경주최씨 집성촌이 되었다.
[현황]
『영덕군 향토사』[1992]에 의하면 도곡2리 총 58가구 중 경주최씨가 38가구, 안동김씨 5가구, 밀양박씨 5가구, 안동권씨 3가구, 기타 성씨 7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