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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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台里 |
영어음역 | Tae-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선주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태리는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농와(聾窩) 이우춘(李遇春, 1673~1748)이 처음 살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태이동촌(台伊洞村)이라고 하였다. 자연마을인 서동골은 지형이 불을 밝히는 초롱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소등촌(所等村)으로 불렀으나 음이 변하여 서동골·서둥골·서도촌(西道村) 등으로 불린다. 합강(合江)은 동쪽의 가구리와 북쪽의 오리원재에서 내려오는 냇물이 이곳에서 합류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아방곡(阿芳谷, 일명 아방현)은 예로부터 아름답고 경치가 좋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밤나무골은 뒷산과 밭둑에 크고 작은 밤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학곡(琴鶴谷)은 조선 중기 때의 문신인 지헌(芝軒) 정사성(鄭士誠, 1545~1607)이 입향하여 망산(望山)에 올라 가야금을 탔더니 난데없이 한 쌍의 학이 나타나 춤을 추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마암동(馬巖洞)과 동선면 하가구동(下佳邱洞) 각 일부를 병합하여 태동이라 하고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와룡면 태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나지막한 구릉지에 마을이 흩어져 있고, 여러 개의 못이 있다.
[현황]
와룡면 남서쪽에 위치하며, 안동 시내에서 북쪽 약 10㎞ 지점에 있다. 2008년 12월 기준 면적은 5.56㎢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250세대에 526명(남자 275명, 여자 25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태1리·태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서동골·태골·합강·아방곡·밤나무골·금학곡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마을 주민은 청주정씨와 안동권씨가 대부분이다. 와룡면 소재지로 모든 행정기관이 모여 있다.
서동골에는 중요민속문화재 제204호인 안동권씨 소등재사(所等齋舍)가 있다. 소등재사는 권곤(權琨, 1427~1502)의 묘 아래에 있는 재사로 추원재라고도 한다. 1775년(영조 51)에 처음 지었고 1830년(순조 30)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서동골 뒤쪽의 지풍산(枝風山, 일명 진봉산(振鳳山))에는 사간(司諫)을 지낸 권춘란(權春蘭)의 묘가 있다.
태골에는 한때 임씨들이 40여 가구 살았으나 지금은 영양남씨·선성이씨·안동권씨를 포함하여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마을 가운데 논둑에는 서지리 선돌과 쌍을 이루는 태리 선돌이 있는데 선돌배기라 불린다. 선돌은 높이 약 250㎝의 화강암으로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진다.
합강에는 일명 불알바위(아들바위)와 치마바위라고 불리는 자웅석(雌雄石)이 있다. 와야천(臥野川)을 사이에 두고 국도 왼쪽의 바위가 불알바위, 오른쪽의 바위가 치마바위이다. 불알바위는 자연석 위에 남근 모양의 돌을 올려놓았고, 치마바위는 커다란 암벽이 치마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이들 유적은 선사시대 다산 신앙과 관련된 거석문화의 유산으로 여겨진다. 안동에서 도산서원을 거쳐 강릉으로 이어지는 국도 35호선과 중앙선이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