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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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山金氏禮安派宗家古文書 |
영어공식명칭 | Books Kept by the Head Family of Yean Branch of the Gwangsan Gim Clan |
영어음역 | Gwangsangimssi Yeanpa Jongga Sojang Jeonje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산28-1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0년 3월 2일 -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고문서 보물 제1018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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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고문서 보물 재지정 |
성격 | 고문서 |
관련인물 | 김효로|김련|김진|김부필|김무 |
수급자 | 김효로|김련|김진|김부필|김무 |
소장처(소유자) | 김준식 |
소장처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산28-1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광산김씨 예안파 관련 고문서.
[개설]
광산김씨는 광주의 토성(土姓) 가운데 제일의 족세(族勢)를 자랑하는 가문으로, 고려 후기에 중앙의 관료로 진출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 김련(金璉), 찬성사(贊成事) 김사원(金士元), 정당문학 김진(金稹) 등과 같은 재상들을 배출하였다. 광산김씨가 여말선초에 안동으로 낙향하게 된 하나의 계기는 순흥안씨(順興安氏)·안동권씨(安東權氏) 등과 혼인을 하여 이곳에 일정한 족적(族的)·경제적 기반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광산김씨 가문은 16세기에 이르러 김연(金緣, 1487~1544)이 문과에 급제하여 강원감사·경주부윤 등 내외의 관직을 역임하면서 이언적(李彦迪)·권벌(權橃) 등과 교유하게 되었고, 안동 지역에서 확고한 재지적 기반을 구축하게 됨에 따라 더욱 번성하였다.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고문서는 안동 예안의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이다. 현재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에는 21대 600여 년 간에 걸쳐 전래된 고문서 1,000여 점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중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7종 429점이다. 이들 고문서는 1990년 3월 2일 보물 제101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산28-1 김준식이 소장하고 있다.
[구성/내용]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고문서는 교지(敎旨)·교서(敎書)·교첩(敎牒)·차첩(差帖) 82점, 호적단자(戶籍單子) 43점, 입양(立養)·입안문서(立案文書) 4점, 소지(所志) 91점, 분재기(分財記) 45점, 명문(明文) 154점, 예장지(禮狀紙) 10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지·교서·교첩·차첩은 1481년(성종 12) 생원 김효로(金孝盧)의 장사랑(將仕郞) 임명장을 비롯하여 그의 후손들이 1893년(고종 30)까지 받은 각종 임명장이다.
호적단자는 1301년(충렬왕 17)의 김련(金璉)·김진(金稹)의 호구단자(戶口單子) 사본을 위시하여 1897년까지의 김씨 일족의 호적 관계 자료이다. 입양·입안문서는 1480년(성종 11) 김효로의 후계(後繼) 입양·입안문서를 비롯하여 1627년(인조 5)까지의 입양에 관련된 각종 문서들이다. 소지는 1567년(명종 22) 김부필(金富弼)이 현감에게 올린 것을 비롯하여 1900년까지의 각종 소지들이다.
분재기는 1429년(세종 11) 김무(金務)의 허여문기(許與文記)를 비롯하여 1731년(영조 7)까지의 각종 노비·전답에 대한 재산 상속문서들이며, 명문은 1477년(성종 8) 이후 1909년까지의 가옥·전답·노비 등의 매매에 관한 문서이다. 예장지는 1562년(명종 17) 이후 1886년(고종 23)까지의 혼사(婚事)에 관련된 각종 문서이다.
[의의와 평가]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고문서는 여말선초에서 구한말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자료들로서 고문서 연구 및 당시의 정치·경제·사회·가족제도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