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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보 초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709
한자 李賢輔肖像
영어공식명칭 Portrait of Yi Hyeonbo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20[퇴계로 1997]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10월 15일연표보기 - 이현보 초상 보물 제87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이현보 초상 보물 재지정
성격 서화류|초상화
제작시기/일시 1542년연표보기
작가 옥준상인(玉埈上人)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소장처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20[퇴계로 1997]지도보기
소유자 이성원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 농암 이현보의 영정.

[개설]

농암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자 시조 작가로 1498년(연산군 4)에 과거에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곧은 성품으로 직언을 함에 따라 안동으로 일시 유배되는 등 정치적으로 기복이 심한 생활을 하였다. 76세 때인 1542년(중종 37)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사임하고 고향인 예안(禮安)으로 돌아와 89세에 사망하기까지 자연을 벗하여 시를 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강호 시조의 대표로 꼽히는 「어부가(漁夫歌)」를 비롯하여 자연을 노래한 많은 시조를 남겨 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현보는 1612년(광해군 4) 향현사에 제향되었다가 1700년(숙종 26) 예안의 분강서원으로 옮겨졌다. 이현보 초상은 1986년 10월 15일 보물 제87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이현보 초상이현보가 경상도관찰사로 재직하던 1536년(중종 31) 팔공산 동화사의 옥준상인(玉埈上人)이라는 승려가 그렸다고 전한다. 규격은 126×105㎝이다. 서안(書案)을 앞에 두고 가부좌하여 앉은 전신 좌상으로서 붉은 무관복을 입고, 머리에는 자양이 넓고 위가 뾰족한 평량자(平凉子)를 썼으며, 허리에는 서대(犀帶)를 두르고 있다.

얼굴부터 옷 주름까지 변화가 없는 균질의 세선(細線)을 사용하고 있으나, 옷의 윤곽과 주름에 쓰인 짙은 홍색 선에는 금색선이 덧대어져 있어 단조로움을 보완하면서 깊이를 더해 주고 있다. 큼직큼직한 이목구비의 표현이 선에 의존하는 과장된 표현을 보여주어 일종의 캐리커처 같은 만화적 묘사를 하고 있으나, 초상의 진지함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이러한 얼굴 모습을 통해 이현보의 자유롭고 활달한 성품이 잘 드러나 있다.

인물 앞에 놓인 서안과 그 위의 벼루집, 서책은 역원근법적 표현을 보여 주고 있으며 초상과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다. 선의 성격, 짙은 색채, 금색선의 사용, 옷자락 선의 과장 등 전체적으로 불화적(佛畵的)인 기법을 엿볼 수 있다. 후손들이 영정(影幀)의 마모를 염려하여 1827년(순조 27) 소당 이재관(李在寬, 1783~1837)으로 하여금 모사하게 한 별본영정(別本影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3호)과 함께 전하고 있다.

[특징]

조선시대 초상화들은 손을 감추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현보 초상에서는 두 손을 모두 드러내고 있어, 초상화가 의도하는 엄숙성과 권위의 과시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유연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얼굴과 옷 주름을 단조로운 선으로 표현하는 옛 기법을 볼 수 있는 작품이며, 현재 몇 점 남지 않은 16세기의 초상화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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