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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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苧田洞農謠 |
영어음역 | Andong Jeojeondong Nongyo |
영어의미역 | Farming Song of Jeojeon-dong, And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 |
집필자 | 정진영,조정현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한국의 전통 농업노동요.
[개설]
안동저전동농요는 저전동 농민들이 벌모를 심고, 호미로 논을 매던 시기에 노동의 피로를 덜고 신명을 북돋우기 위해 불렀던 이 지방 특유의 노동요이다. 「모찌기 소리」, 「모심기 소리」, 「애벌 논매기 소리」, 「두불 논매기 소리」, 「타작 소리」, 「치야 칭칭」 등으로 이루어진다.
[채록/수집상황]
초대 예능보유자 조차기(趙且基)는 2002년 작고했는데, 타고난 목청과 음악적 재능으로 인근 마을에까지 널리 알려진 소리꾼이었다. 조차기는 안동저전동농요 외에도 「각설이 타령」, 「권주가」, 「후사나 타령」 등을 곧잘 불렀다.
[구성 및 형식]
농요는 토속민요의 한 종류로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불린다. 농사터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르거나 농사일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르기도 하며, 호미나 낫 같은 농기구를 만들면서 부르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 종류나 노랫말의 내용, 노래 부르는 방법 등이 다르다. 안동저전동농요는 앞소리꾼이 사설을 메기면 뒷소리꾼들이 후렴을 받는 선후창 형식이다.
안동저전동농요는 농사소리 가운데에서도 「논매기 노래」, 「달개 소리」, 「망깨 소리」의 가락과 부르는 유형이 다른 지방과 다른 것이 특징이다. 「논매기 노래」의 후렴은 「예천 농요」와 비슷한 점이 있으나 예천보다 변화음이 적다. 부르는 방식은 어떤 노래이든 처음에는 사설조로 길게 메긴 다음 뒤에 가서 자진가락으로 부른다.
「논매기 노래」는 「모찌기 소리」, 「모심기 소리」, 「애벌논매기 소리」, 「두벌논매기 소리」로 이루어진다. 일의 성격에 따라 선후창을 적절히 배열하고, 일의 진행과정에 따라 첩에 대한 애정의 진행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가사로 사용한다. 「모찌기 소리」는 후렴은 없으면서 애첩이 찾아오는 모습을, 「모심기 소리」는 후렴은 없으면서 주인의 한량질을 설명하면서 첩의 집에 찾아가 사랑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애벌논매기 소리」는 “에헤이~ 이에~”의 메기는 사람의 후렴과 “헤이~이 아호우~ 오후오~”라는 받는 사람의 후렴이 나오고 가사의 내용에는 ‘베틀가’와 ‘치야칭칭나네’가 나오면서 낭군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두벌논매기 소리」에는 “어헐럴러 상사뒤야”의 메기는 사람의 후렴과 “치야칭칭나네”의 받는 사람의 후렴이 나오면서 「성주풀이」의 가사를 바꾸어 낭군의 장례식과 그 죽음을 애통해 하는 내용이 나온다.
「달개 소리」는 “오오~ 달개~”의 후렴을 사용하여 무덤 주위의 경관에 대한 풍수지리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망깨 소리」는 “어여라~ 처~ 어~”의 후렴을 사용하며 「논매기 소리」와는 달리 일과 관련된 내용만 나온다.
[내용]
「애벌 논매기 소리」의 사설은 「베틀 노래」의 사설을 빌려온 것이고 「두불 논매기 소리」의 후렴은 ‘오호룰룰 상사디요이’로 일관한다. 「타작 소리」는 보리타작 때 부르는 소리로 목도리깨꾼이 앞소리를 메기면 종도리깨꾼들이 후렴을 받으며 도리깨질을 하므로 템포가 아주 빠르다.
「애벌논매기 노래」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에헤이- 이에- 헤이-이 아호우-오후오/ 하늘위에 베틀놓고/ 구름위에 이에걸고/ 이내다리 두 다리/ 베틀다리 네다리/ 마구합쳐 육다리를/ 옥난강에 벌려놓고/ 잉에대는 삼형제요/ 눌름대는 호부래비/ 삼각수 베개머리/ 벌림하나 벌레줄라/ 산간중에 넉이로다/ 헤이-이에- 헤에-이 아호우-오후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농요는 농사일을 하면서 가무와 함께 행하던 풍농의례의 일부분이다. 저전리는 속칭 ‘모시밭’으로 불려지는 곳이다. 이 마을은 기묘사화를 피해서 이곳에 정착한 한양조씨 일문이 개척한 곳으로, 지금까지 저전리 한양조씨 집성촌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마을의 모시 생산은 6.25전쟁을 기점으로 급격히 쇠락하였다.
안동저전동농요는 1970년대 이후 기계화학농법이 시작되면서 점차 쇠퇴하였다. 그나마 보리와 콩의 타작에 도리깨를 쓰는 관행이 비교적 오래 남아 「타작 소리」는 1980년대 초반까지도 농업노동의 현장에 살아 있었다. 하지만 전통적 밭농사의 중요성이 감소하면서 이마저도 쇠퇴하여 무형문화재로서만 명맥을 잇고 있다. 1980년 12월 30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황]
안동저전동농요의 전승지로서 저전리 한양조씨(漢陽趙氏) 집성촌은 천등산 아래 구릉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은 본마을·정외마을·여리마을·거리마을 등 네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밭농사와 논농사를 엇비슷하게 짓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이 마을의 농요 가운데 나무할 때 부르는 민요인 「어사용」, 장례를 치를 때 부르는 민요인 「달개 소리」, 그리고 집터를 다질 때 부르는 민요인 「망깨 소리」 등 모두 9개 종목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안동저전동농요는 선창하는 기능보유자 조차기의 창법과 사설이 독특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이 일게 하고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조차기가 어릴 때부터 불러오던 구전 농요로서 노래의 내용과 가락이 독특하여 고유성이 있다고 평가된다. 1968년, 1973년, 1976년 3회에 걸쳐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