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7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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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晩愚亭 |
영어음역 | Manujeong |
영어의미역 | Manujeong Pavili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산4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8월 5일 - 만우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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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만우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성격 | 누정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855년(철종 6)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산44 |
소유자 | 류성호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개설]
만우정은 조선 후기 병조참판을 지낸 류치명(柳致明, 1777~1861)이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 류치명은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명문 전주류씨 집안의 불천위(不遷位) 5인 중 한 사람으로 자는 성백(誠伯), 호는 정재(定齋)이다. 남한조(南漢朝)·정종로(鄭宗魯)·이우(李瑀)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05년(순조 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831년 전라도장시도사(全羅道掌試都事)가 되었다.
1832년 홍문관교리에 발탁된 후 1847년 대사간이 되고, 이후 한성좌윤·병조참판 등을 지냈다. 1855년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추존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대사간 박래만(朴來萬)의 탄핵을 받고 상원에 유배되고, 이어 지도(智島)에 안치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856년 가의대부(嘉義大夫)의 품계에 올랐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세상을 뜰 때까지 만우정에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변천]
만우정은 1855년(철종 11) 류치명의 제자들이 류치명을 위한 강학 공간으로 건립하였다. 원래는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사의동 악사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기에 이르러 1988년 현 위치인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정재 종택의 오른쪽으로 이전 보수하였다.
[형태]
만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집이다. 우측 2칸은 우물마루에 평면 좌우 칸을 통칸으로 꾸며 5량가(五樑架)의 간결한 구조를 보인다. 원기둥과 각기둥을 함께 썼는데 대청에는 모두 원기둥을 사용하였다. 대청의 바깥벽은 판벽(板壁)으로 마감하고 모든 칸에 창호를 달았는데, 정면의 가운데 것은 키가 높은 굽널세살문으로 출입하는 데 쓰고, 나머지는 울거미가 있는 두 짝 널문을 달아 창으로 썼다. 동자형 대공을 세운 장식성이 없는 간결한 구조를 하고 있다. 공조판서 이원조(李源祚)가 쓴 ‘만우정(晩愚亭)’ 현판이 걸려 있고, 류치명이 지은 기문이 있다.
[현황]
만우정은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류성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