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9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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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 河回- 謙菴精舍 |
영어공식명칭 | Gyeomamjeongsa House in Hahoe Village, Andong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37[풍일로 181]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9년 1월 26일 - 안동 하회마을 겸암정사 국가민속문화재 제8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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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안동 하회마을 겸암정사 국가민속문화재 재지정 |
성격 | 정사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567년(명종 22)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37[풍일로 181] |
소유자 | 류상붕 |
문화재 지정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사.
[개설]
안동 하회마을 겸암정사는 겸암(謙庵) 류운룡(柳雲龍, 1539~1601)이 학문 정진과 제자 양성을 위해서 지은 정사이다. 류운룡은 15세에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에 힘썼으며, 이황이 향리인 도산에 서당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가 배움을 청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황 또한 류운룡의 학문적 재질과 성실한 자질에 감복하여 총애하였다 한다.
류운룡은 화천(花川) 건너 부용대의 서편에 정사를 짓고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썼는데, 스승인 이황은 주역(周易)의 겸괘(謙卦)에 형상하기를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는 스스로 자기 몸을 낮춘다는 뜻이 담긴 ‘겸암정(謙菴亭)’이라는 현판을 써 주며 ‘그대가 새 집을 잘 지었다는데, 가서 같이 앉고 싶지만 그러하지 못해 아쉽네(聞君構得新齋好 欲去同牀恨未如)’라는 편지글을 적어 주기도 하였다. 류운룡은 그 이름을 귀하게 여겨 자신의 호로 삼았다.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37번지[풍일로 181]에 있다. 화천 너머에 우뚝 솟은 부용대의 서쪽 강물이 크게 감돌아 굽이치는 절벽 위의 소나무 숲 속에 남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사에서 내다보면 강 건너 모래사장과 송림 그리고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광덕교를 지나 화천서원 쪽으로 좌회전하지 않고 500m 정도 곧장 나아가면 왼편에 안동 하회마을 겸암정사를 알리는 푯돌이 있고, 이곳에서 화살표를 따라 들어가면 곧바로 안동 하회마을 겸암정사를 만날 수 있다.
[변천]
안동 하회마을 겸암정사는 1567년(명종 22)년 류운룡이 건립하였다.
[형태]
절벽 가장자리 뒤로 조금 물러난 곳에 ‘ㅡ’자형의 안동 하회마을 겸암정사가 앉아 있고, 그 뒤편에 부속채인 살림채가 ‘ㄱ’자형을 이루고 있다. 살림채 좌측에는 초가 방앗간채가 자리 잡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 겸암정사 뒤쪽 우측 모서리와 살림채 사이의 좁은 틈새에 안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내고, 뒤편 좌측과 살림채 익사(翼舍) 전면 우측으로 담장을 쌓아 살림채 안을 볼 수 없게 하였다.
누(樓) 형식인 안동 하회마을 겸암정사는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2칸통 온돌방을 두고, 우측에는 좌측과 달리 뒤쪽 1칸만 방으로 하였으며, 그 앞쪽을 마루로 꾸며 대청을 보다 넓게 만들었다. 정면과 좌측·우측으로는 헌함(軒檻)을 돌리고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설치하였다. 대청과 좌측 방 사이에는 이분합 들문을 설치하였고, 우측 방 사이에는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았으며, 대청 배면에는 판벽(板壁)에 울거미 널문을 달았다.
대청 배면의 좌측 칸에는 머름을 들인 쌍여닫이를 내고 우측 칸에는 살림채로의 출입을 위해서 머름 없는 키 큰 외여닫이를 설치하였다. 외부에서 정사로의 출입은 누마루 우측 밑으로 들어와 누 앞마당을 거쳐 들어설 수 있다. 전면만 원주를 세우고 기둥 상부에 안팎을 초각한 보아지를 끼운 5량가 장혀수장집으로서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살림채는 좌로부터 부엌·안방·대청·찬광이 차례로 놓여 ‘ㅡ’자형을 이루고, 찬광 앞으로 건넌방과 마루방이 뻗어 ‘ㄱ’자형이 되었다. 누마루인 마루방은 전면을 개방하고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설치하여 살림채에서 유일하게 전면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찬광과 건넌방 사이에는 건넌방에서 사용하는 좁은 벽장이 있고, 건넌방과 마루방 앞에는 대청과 연결되는 쪽마루가 있다.
찬광과 대청 사이 경계 벽에는 찬광의 음식 보관에 적합한 판벽(板壁)을 치고 두 짝 띠장널문을 달았다. 보기 드물게 큰 찬광의 규모로 미루어 볼 때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공부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ㅡ’자형 본채와 익사(翼舍) 마루방 전면에는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에는 방주를 세웠다.
[현황]
1979년 1월 26일 국가민속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2011년 현재 소유자는 유상붕이고 관리자는 유영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