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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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常變通攷 |
영어음역 | Sangbyeontonggo |
영어의미역 | Common Observation of Eternity and Change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병걸 |
성격 | 가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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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류장원(柳長源, 1724~1796)|류범휴(柳範休)|류건휴(柳健休)|류휘문(柳徽文)|류정문(柳鼎文)|류치명|이병원(李秉遠) |
편자 | 류장원(柳長源, 1724~1796) |
간행자 | 류범휴(柳範休) |
저술연도/일시 | 1783년 |
편찬연도/일시 | 1830년 |
간행연도/일시 | 1926년 |
권수 | 30권 |
책수 | 16책(목록 1책 포함) |
사용활자 | 목판본 |
가로 | 16.5㎝(목록 1책 19.7㎝) |
세로 | 21.6㎝(목록 1책 29.3㎝) |
표제 | 常變通攷 |
간행처 | 안동 동암정 |
소장처 | 안동대학교도서관|한국국학진흥원 |
소장처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388[경동로 1375]|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20[퇴계로 1997]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 유학자 류장원이 편찬한 예서(禮書).
[개설]
동암(東巖) 류장원(柳長源, 1724~1796)은 안동의 동부 임동면 무실마을[水谷]에서 태어났다. 공조참의를 지낸 류관현(柳觀鉉, 1692~1764)의 아들이다. 중부인 류승현(柳升鉉)과 김낙행(金樂行, 1708~1766)에게 배운 뒤에, 18세기 영남학파를 이끌었던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의 문하에 들어갔다. 이후 류장원은 이상정의 제자 중에서 예학에 가장 정통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변통고(常變通攷)』는 영남학파 출신 학자들이 쓴 예서 중 대표적인 것으로, 30권의 관(冠)·혼(婚)·상(喪)·제(祭)의 사례 중에서 상례가 16권으로 가장 많다.
[편찬/발간경위]
『상변통고』는 원래 류장원이 60세인 1783년에 22권으로 완성되었으나 살아생전에는 간행되지 못하였다. 류장원의 사후에 조카인 류범휴(柳範休)가 류장원의 제자인 류건휴(柳健休)와 류휘문(柳徽文)에게 교정을 부탁하였는데, 이들과 더불어 류장원의 종손자인 류정문(柳鼎文)과 류치명이 10년간의 원문 교정과 토론을 거친 뒤에, 이상정의 손자인 이병원(李秉遠, 1774~1840)의 감교를 거쳐 1830년에야 30권 16책으로 출간하였다. 책의 권수가 늘어난 이유는, 류장원의 원본에 담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열람의 편리를 위하여 권수를 늘린 것이라고 한다. 권말에 류치명과 이병원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상황]
안동대학교도서관과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30권 16책(목록 1책 포함)이며, 목판본이다. 표제는 상변통고(常變通攷)이다.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 크기는 가로 16.5㎝, 세로 20.9㎝이다. 목록 1책은 가로 19.7㎝, 세로 29.3㎝로 약간 다르다. 행수는 11행, 한 행의 자수는 21자이다.
[구성/내용]
권수에는 범례(凡例), 인용 서목(書目), 선유성씨(先儒姓氏), 가례서(家禮序), 이천예서(伊川禮序), 예총론(禮總論), 목록(目錄)이 들어 있다. 권1~4는 통례(通禮), 권5는 관례(冠禮), 권6은 혼례(婚禮), 권7~22는 상례(喪禮), 권23~25는 제례(祭禮), 권26은 향례(鄕禮), 권27 학교례(學校禮), 권28 국휼례(國恤禮), 권29과 권30에 가례고의(家禮考疑)가 실려 있다.
인용 서적은 중국의 한(漢)·당(唐)·송대(宋代)의 책 130여 종과 조선시대의 예서(禮書) 50여 종이 들어 있고, 인용 선유(先儒)는 한·당·송의 중국 학자 79인과 조선 학자 26인 등 역대 예학의 대가들이 망라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본문을 따라서 항목을 정하고 관련 학설을 수록하였는데, 가례에 언급되지 않았어도 논쟁이 많은 것은 따로 조목을 설정하였다. 각 항목마다 가례 본문을 먼저 넣고 이어서 주석을 붙였다. 권26 이하에 들어 있는 향례(鄕禮), 학교례, 국휼례는 본디 가례에는 없던 것인데 이를 다룬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의의와 평가]
조선 유학자들의 예서, 특히 영남학파에서 편찬된 예서 중에서 전거가 가장 풍부하고 체계가 잡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