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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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斗寅 |
영어음역 | Gwon Duin |
이칭/별칭 | 춘경(春卿),하당(荷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주부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춘경(春卿), 호는 하당(荷塘)·설창(雪窓). 충정공(忠定公) 권벌(權橃)의 5세손이다. 외할아버지는 이백명(李伯明), 아버지는 권목(權霂), 처는 창녕성씨(昌寧成氏) 성석하(成錫夏)의 딸이다.
[활동사항]
권두인은 안동부(安東府) 춘양현(春陽縣) 유곡리(酉谷里, 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서 태어났다. 홍준형(洪浚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현일(李玄逸), 정시한(丁時翰)을 존경하였고 경기도 연천으로 허목(許穆)을 찾아가 배우기도 하였다. 1677년(숙종 3) 35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였지만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심했다.
권해(權瑎)의 천거로 효릉참봉(孝陵參奉), 장원별제(掌苑別提), 태복주부(太僕主簿), 공조좌랑, 동궁사어(東宮司禦), 공조정랑, 사직서령(社稷署令)을 지냈으며 외직으로 전의현감, 안음현감, 영춘현감, 장수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권두인은 평소 말이 적고 덕이 있었으며 몸가짐이 단아하고 뜻이 확고하였으며 함께 있어도 함부로 할 수 없고 혼자 있을 때도 태만하지 않아 향리에 아름다운 명성이 퍼졌다. 기사환국(己巳換局) 이후 조정에서 영남의 선비 가운데 학문과 행실이 뛰어난 자 약간 명을 천거했는데 권두인이 수위를 차지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하당집(荷塘集)』이 전한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안동의 동백서원(東柏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