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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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是瓚 |
영어음역 | Gim Sichan |
이칭/별칭 | 황중(黃中),비문(斐文),일일재(一一齋),정거산인(淨居山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민석 |
성격 | 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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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
성별 | 남 |
생년 | 1754년(영조 30) |
몰년 | 1831년(순조 31) |
본관 | 광산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초자는 비문(斐文), 자는 황중(黃中), 호는 일일재(一一齋)·정거산인(淨居山人). 설월당(雪月堂) 김부륜(金富倫)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김성익(金聖翼),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이다.
[활동사항]
김시찬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이 남달랐으며 글을 읽을 때는 한꺼번에 몇 줄씩 내려갔고 한 번 보면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15세 때 부친의 병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끊어서 피를 입에 넣어 소생시켰으나 하루 만에 세상을 마쳤다고 한다. 1792년(정조 16) 사도세자의 전례에 관한 일로 영남 유생들과 같이 상경하여 소(疏)를 올릴 때 함께 하였다.
2차 상소 때에는 상소문에 맨 먼저 이름을 올리려는 의견이 있었으나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사양하였다. 같은 해 여름 군현의 아이들을 교육하는 동몽교관에 제수되자 사은도 하지 않고 귀향하였다. 김시찬은 경사(經史), 자전(子傳), 산천지리(山川地理), 의문상변(儀文常變), 인물장부(人物臧否), 만성보(萬姓譜) 등에 통달하였다. 문장은 깊고 넉넉하였으며, 필법은 정묘하여 당대 최고로 일컬어졌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일일재집(一一齋集)』 6권 3책이 있다. 문집에는 서문은 없고, 후손 김영탁(金永倬)의 발문이 실려 있다. 권1~3에는 시 550수가 실려 있는데 그 중 「관기삼백절(觀碁三百絶)」은 뒷부분 114수가 누락되어 있다. 시는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한 것 외에 당시의 풍속을 표현한 것이 다수 있다. 「관기삼백절」에는 인물장부에 대한 통견과 함께 역사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지애(芝厓)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