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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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守盈 |
영어음역 | O Suyeong |
이칭/별칭 | 겸중(謙仲),춘당(春塘),선성삼필(宣城三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명수 |
성격 | 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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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생년 | 1521년 |
몰년 | 1606년 |
본관 | 고창 |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가계]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겸중(謙仲), 호는 춘당(春塘). 할아버지는 의령현감을 지낸 오석복(吳碩福), 아버지는 전의현감을 지낸 오언의(吳彥毅),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송재(松齋) 이우(李堣)의 딸이다. 할아버지 오석복이 만년에 함안으로 이거하였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외당숙이 된다.
[학문과 사상]
오수영은 5, 6세 때 외가에서 지내면서 퇴계 이황과 함께 외할아버지 이우의 가르침을 받았다. 14세 때 『효경(孝經)』 한 부를 직접 베껴서 소매 안에 넣고 다녔고, 16세 때부터 이황에게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스승으로 지극히 섬겨 일거일동을 지시에 따르자 이황이 『이정전서(二程全書)』를 손수 베껴주었다. 1555년(명종 10)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당시 당대의 명필 한석봉(韓石峯)이 고시관이었는데 시권(試卷)의 필획이 강건한 것을 보고 탄복하였다고 한다.
1605년(선조 38) 수직으로 용양위부호군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72세의 고령으로 직접 전쟁에 참가하지 못함을 한탄하여 조목(趙穆)과 김성일(金誠一)에게 글을 보내 국방에 전력함을 독려하고 이여송(李如松)에게도 글을 보내 전공을 치하하였다. 오수영은 글씨를 잘 써서 금보(琴輔), 이숙량(李叔樑) 등과 함께 ‘선성삼필(宣城三筆)’의 칭호를 얻었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4권 2책의 『춘당집(春塘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군위의 남계서원(南溪書院)에 봉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