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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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世淵 |
영어음역 | Gwon Seyeon |
이칭/별칭 | 조원,담와,성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강윤정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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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
성별 | 남 |
생년 | 1836년 |
몰년 | 1899년 |
본관 | 안동 |
대표경력 | 안동의진 의병장 |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조원(祖源), 호는 담와(澹窩) 혹은 성대(星臺)이다. 1836년(헌종 2) 지금의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서 출생하여 1899년(고종 36)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권세연은 1895년 말에 거의(擧義)한 안동의진(安東義陣)의 1대 대장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1895년 말부터 1896년 초에 걸쳐 의병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는데, 안동 의병도 1895년 12월 초에 시작되었으며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계기가 되었다. 단발령 소식이 안동에 전해지자 안동 지역 유림 대표들은 봉정사에 모여 거병 문제를 논의하였다. 권세연은 1896년 1월 20일 아침 안동부 삼우당(三隅堂) 앞뜰에서 유림 대표들에 의해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권세연은 본부를 향교에 차려두고 인근 지역 사민(士民)에게 의병 동참을 촉구하는 「경상도 안동 창의대장 권세연격(慶尙道安東倡義大將權世淵檄)」을 발표하였다. 이튿날인 1월 21일에는 연무정에서 안동의진을 편성하였다.
안동의진이 진영을 갖추고 안동부가 의병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자 관찰사 김석중은 1월 24일 안동부를 탈출하였다. 도망갔던 김석중은 1월 29일 대구부의 관군을 이끌고 안동부의 탈환을 위해 예천에 진을 쳤다. 권세연은 김석중을 막아내느라 전투를 벌였지만 패하고 말았다. 이후 의병장 권세연은 태백산 구마동(九麻洞)으로 들어가 의병을 모으고 무기를 구입하는 등 재기를 준비하였다. 1896년 2월 이중린(李中麟)이 이끄는 의진이 청량산에서 편성되었고, 예천에서도 박주대(朴周大)를 이어 박주상(朴周庠)이 의진을 맡으면서 안동을 중심으로 반격 대열이 형성되었다.
안동의진 역시 주변 지역 의진과 연합하여 반격을 준비하였다. 이러한 의병의 기세에 관찰사 김석중은 2월 19일 다시 안동부를 빠져나갔다. 김석중은 2월 25일 문경 이강년 의진에 붙잡혀 농암 장터에서 처형되었다. 김석중이 처형된 날 권세연은 안동 의병을 거느리고 안동부에 무혈 입성하여 안동향교에 진을 쳤다. 권세연은 조직을 정비하고 의연금을 모집하는 등 진영을 정비하였고, 막대한 군자금을 확보하여 3월 8일 조직을 개편하고 전투를 대비해 나갔다. 새롭게 조직을 편제한 안동 의병은 봉화의진과 호좌의진의 서상열 의병과 연합하였다. 그러나 일주일 후 권세연은 한 달 여 전에 있었던 패배를 자책하며 스스로 의병장에서 물러났다.
[상훈과 추모]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