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2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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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北北部新聞 |
영어음역 | Gyeongbukbukbusinmun |
영어의미역 | Gyeongbukbukbu Newspaper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당북동 110-1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순임 |
성격 | 지역 주간 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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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인 | 김시중|장찬덕 |
발행인 | 김덕선|장찬덕 |
판형 | 대판 |
창간연도/일시 | 1990년 2월 12일 |
종간연도/일시 | 2008년 11월 14일 |
총호수 | 450호 |
발행처 | (주)경북북부신문사 |
발행처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당북동 110-12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당북동에 있는 (주)경북북부신문사에서 발행하였던 지역 주간 신문.
[개설]
1980년 7월 중순부터 비상계엄이라는 이름 아래 시행된 철저한 사전 검열로 인해 중앙 일간지는 물론 지방 일간지도 크게 위축되었다. 1987년 국민들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6월 항쟁으로 6·29선언이 발표된 후 「언론기본법」이 폐기되었으며, 이때부터 거의 모든 군 단위에 주간 신문 형태의 지역 신문과 광고 정보지 형태의 신문이 폭넓게 발행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힘입어 『경북북부신문』이 창간되어 수도권 뉴스에 밀려나 있던 지역의 소식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창간경위]
『경북북부신문』은 지방 자치 시대에 발맞추어 지역의 소식을 정확하고 빠르게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창간하였다. (주)경북북부신문사는 1989년 11월 30일 공보처에 대표자 김시중과 발행인 겸 편집인 김덕선으로 정기 간행물 등록인가를 마쳤으며, 1990년 1월 20일 경상북도 안동시 당북동 48-55번지[경동로 555]에서 『경북북부신문』 대판 8면으로 창간 준비호를 발행하였다. 한 달 후인 1990년 2월 12일 대판 12면의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형태]
대판 8면으로 가로쓰기를 원칙으로 하였다.
[구성/내용]
『경북북부신문』은 지역 정치·경제·기획·교육·문화생활·사회·광고 등의 소식을 골고루 실었다. 그중에서 지역 문화 소식을 많이 게재한 것이 특징이었다.
[변천과 현황]
『경북북부신문』은 1990년 6월 25일 재정난으로 제16호를 마지막으로 휴간하였다. 같은 해 9월 13일 발기인 장찬덕 외 6명이 회사를 인수하고 법인을 설립하였으며, 사무실을 경상북도 안동시 당북동 102번지로 이전하였다. 이후 11월 1일부터 정상 업무를 개시하고 본사에 10명, 서울 지사에 2명, 청송·영양에 1명, 영주·봉화에 2명, 영풍에 1명, 의성에 2명의 직원을 두었다. 12월 22일 복간 제1호(제17호)를 발행하였다.
1992년 회사를 경상북도 안동시 당북동 110-12번지로 이전하였으며, 4월 13일 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세종화랑을 인수하여 본사 문화센터 산하 기구로 편입하였다. 이후 19년 동안 총 450호의 신문을 발행하였으나 2008년 11월 14일 심각한 경영난으로 자진 폐간하였다.
[의의와 평가]
(주)경북북부신문사는 세종화랑을 인수하여 초대전과 대관전 등을 개최하여 지역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청소년 가장들을 위한 ‘함께 사는 집’을 건립하여 사회사업에도 참여하였다. 지역 신문사로서 특이하게 서울에 지사를 설치하고, 주재 기자가 7년 동안이나 근무하였다는 것은 (주)경북북부신문사의 업적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