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22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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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出産儀禮 |
영어의미역 | Childbirth Ceremony |
이칭/별칭 | 출산속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집필자 | 박동철 |
[정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아이의 출산을 전후하여 행하는 의례.
[개설]
출산의례(出産儀禮)에는 넓은 의미에서 아이를 갖기 위해 행하는 기자의례(祈子儀禮)부터 금기, 태교, 해산, 태처리 등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지 의례가 포함된다. 출산의례는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고 안전하게 하기 위한 실질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출산속(出産俗)이라고도 한다. 출산에 관한 풍속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며, 전국적으로 대동소이하다.
[연원 및 변천]
출산의례에 관한 연원을 따지기는 참으로 어렵다. 인류가 출산을 하기 시작한 이래로 그에 관한 풍속이 자연스럽게 생겨나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과학의 발달과 생활환경 및 인식의 변화로 출산의 의례적인 부분이 많이 감소하였다. 또한 출산의 방식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과학으로 태아의 성감별이 가능해지면서 태아의 성을 구별하는 여러 가지 전통적인 방법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삼신을 섬기는 가정이 줄어들면서 삼신에 관한 의례도 더 이상 행하지 않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또한 주거 환경이 전통 가옥에서 아파트 등의 현대식 가옥으로 바뀌고, 가정에서 출산하던 것이 병원 출산으로 바뀌면서 시어머니가 아이를 받아주던 풍습이나 낫이나 칼로 탯줄을 끊는 것, 탯줄을 태우는 것 등 가정에서 행해지던 많은 의례 행위가 사라지게 되었다.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는 안동병원과 안동성소병원 등 2개의 종합병원과 여러 개의 산부인과가 존재하며, 요즘은 거의 모든 출산이 이들 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절차]
안동 지역의 출산에 관한 풍속을 알아보기 위하여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에서 조사된 사례를 제시하고자 한다. 제보자는 풍산읍 서미리에 거주하는 60~80대 사이의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으로 소산댁·구미댁·안산댁·운산댁 등이다.
1. 출산 전 의례
1) 기자치성(祈子致誠): 임신을 위해서 또는 아들은 낳기 위해서 특이한 형상의 자연물이나 삼신할머니에게 치성을 드리는 것을 기자치성이라 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삼신 바가지나 삼신 단지 앞에 상을 차리고 맑은 물 한 그릇을 떠 놓은 뒤 비손을 하기도 한다. 또한 운산댁처럼 아들을 낳기 위해 바위나 산에 가서 기자치성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며느리는 가지 않고 시어머니만 가는데, 간혹 시아버지가 동행하기도 한다. 삼신 대신 친정에서 모셔온 용신에게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2) 태몽(胎夢): 임신 전후에는 본인이나 주변의 사람들이 태몽을 꾸기도 한다. 태몽은 잘 맞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소산댁은 붉은 감을 세 개 따서 치마에 싸오는 꿈을 꾸고 맏아들을 낳았다. 안산댁은 첫아이 때 호랑이 새끼를 품고 있는 꿈을 꾸어 아들을 기대했으나 딸을 출산하였다. 비록 딸이기는 하지만, 첫딸은 나중에 태몽처럼 아들 못지않은 딸이 되었다고 한다. 아들 때는 알밤을 담는 꿈과 구렁이에게 물리는 꿈을 꾸었다.
3) 임신 확인: 임신을 확인하는 방법은 월경이 없는 것과 입덧을 하는 것이다. 그 외에는 뚜렷한 방법이 없었다. 입덧을 하면 음식 냄새를 맡기 싫고 먹을 수도 없기 때문에 무척 고생을 한다.
4) 태아 성 구별: 태아의 성을 짐작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떡시루를 엎어 모양이 좋으면 아들, 그렇지 않으면 딸이라 했다. 구미댁은 걸음걸이를 보아 뒤태가 좋으면 아들이라고 했다. 안산댁은 임산부의 배꼽 모양을 보고 구별하는데, 배꼽이 오목하게 들어가 있으면 아들이고 튀어나와 있으면 딸이라고 여겼다 한다.
5) 임신 중 금기: 임신 중에는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 여러 가지 금기가 따른다. 임산부는 좋은 것만 보고, 흉사에는 가지 않으며, 좋지 않은 일은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안산댁은 임신 중에 닭고기를 먹으면 닭처럼 오돌토돌한 피부를 가진 아이가 나온다 하여 어른들이 먹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수동2리(현 풍산읍 수리)의 60~80대 여성 대부분은 너무 살기가 어려워 ‘오히려 없어서 못 먹었다’고 대답하는 이들도 많다.
6) 출산 준비: 출산 전까지 일을 하다가 진통이 시작되어서야 비로소 방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아이를 낳기 위한 준비는 사전에 해 두어야 한다. 깨끗한 짚과 탯줄을 자를 낫과 가위를 준비해 둔다. 헌 옷으로 기저귀와 배냇저고리를 만들어 둔다. 특히 배냇저고리는 보관하고 있다가 큰일이 있을 때 자식의 품에 넣어주면 일이 잘 풀린다고 여겼다. 또한 배냇저고리를 물려주면 아이의 재주가 남에게 넘어간다고 여겨 형제끼리는 물려 입어도 남에게는 절대 주지 않는다.
2. 출산
1) 아이 낳기: 산통이 시작되면 방에 짚자리를 깐다. 남편은 산방에 들어오지 못한다. 아이는 시어머니가 받는다. 산모는 배우지 않아도 알아서 아이 낳는 법을 터득하는데, 안산댁 역시 그랬다.
2) 탯줄 자르기: 탯줄은 시어머니가 자른다. 아들일 경우에는 낫으로, 딸일 경우에는 가위로 자른다. 안산댁은 탯줄은 길게 잘라야 아이들이 소변을 자주 안 본다고 하였다. 탯줄을 자른 후 솜을 덮어 놓으면 삼칠일 후 자동적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떨어진 탯줄은 불이 들어오는 방에 달아 잘 말려 보관해 둔다. 아이가 아플 때 쓰기 위함이다. 소산댁은 말린 탯줄을 서랍에 보관하였다고 한다. 구미댁은 잘 말린 탯줄을 거즈에 싸서 지금까지도 보관하고 있다.
3. 출산 후 의례
1) 짚과 탯줄 처리: 탯줄과 태반은 짚에 싸서 첫국밥을 하는 아궁이에 넣고 태운다. 이때 3일 동안 재를 치우지 않고 계속 태운다. 안산댁은 출산 후 3일 동안 아궁이에 때는 불을 ‘삼불’이라 했다. 삼불을 피우는 동안은 짚자리를 걷지 않고 산모가 그 위에 그냥 누워 있다가 사흘이 되면 짚을 걷어 태우고 새로 깨끗한 짚을 깐다.
2) 미역국: 출산 후 먹을 미역은 보통 시아버지가 사 온다. 국은 시어머니가 끓이는데, 산모는 물론 삼신상에도 국을 올린다. 이때 먹는 미역국에는 고기를 넣지 않고 맑게 끓인다. 출산 후에는 부엌에서 기름을 잘 쓰지 않으며, 기름기가 있는 음식도 잘 먹지 않는 법이라 한다. 안산댁은 삼칠일(21일) 마지막 날 ‘칠국’이라 하여 동서들을 불러 놓고 미역국을 대접하였다. 삼칠일은 원래 7일씩 3번이라 하여 21일을 뜻한다.
3) 삼신상 차리기: 아이를 낳으면 산방에 삼신상을 차린다. 상을 차리는 법은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구미댁은 미역국과 밥을 올리되 물은 따로 떠 놓지 않았다. 안산댁은 출산 후 7일이 되는 날에 삼신상에 미역국과 깨끗한 물 한 그릇을 올리고 그 후부터는 물만 올렸다. 물만 떠 놓는 집도 있고, 밥과 미역국을 올리는 집도 있다. 대개 초칠일 동안에는 ‘칠상’이라 하여 미역국과 밥을 올리고 그 다음부터는 물만 올린다.
4) 금줄치기: 금줄은 왼새끼를 꼬아 삼칠일 동안 대문에 쳐둔다. 이는 출산을 알림과 동시에 다른 사람이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 부정을 막기 위함이다. 금줄에는 기본적으로 부정을 쳐내는 의미의 숯과 삼신을 뜻하는 솔잎을 꽂는다. 아들을 낳으면 고추도 꽂는다. 소산댁은 금줄에 돌을 꽂았는데, 이는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라는 의미이다. 삼칠일이 지나면 금줄을 걷는데, 이른 아침에 걷을수록 아이가 말을 빨리 배운다고 믿었다. 삼칠일이 지나지 않더라도 집안에 제사나 초상 같은 일이 있으면 걷어낸다. 금줄은 살아 있는 나무에 걸어두고 저절로 삭아 없어지도록 한다.
5) 산후조리: 삼칠일이 지날 때까지 시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산방에 출입할 수 없다. 남편도 들어올 수 없다. 그러나 살림이 넉넉하지 않거나 일손이 딸리는 농촌에서 21일 동안 그저 누워 지낼 수 있는 산모는 많지 않았다. 때문에 삼칠일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하여 7일째 되는 날을 다시 1일로 하여 겹쳐 세게 되는데 이를 ‘곱친다’고 하였다. 한번 곱치면 19일, 두 번 곱치면 17일이 되는데, 심하게는 세 번씩 곱치기도 하였다. 소산댁과 구미댁은 초칠일을 넘기지도 못하고 밖으로 일을 하러 다녔다.
6) 출산 후 금기: 출산 후에는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지켜야 할 금기들이 있다. 구미댁은 아이를 낳고 부엌에서 기름을 사용하면 해롭다고 여겼다. 아이를 낳으면 깨끗한 것만 먹어야 하는데, 기름을 사용하면 부정을 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기름을 사용하면 아기의 몸에 불에 덴 상처나 기름방울 같은 수포가 올라온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런 일을 겪기도 했다. 안산댁은 출산 후 7일 동안은 부정을 막기 위해 아궁이의 숯을 꺼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자신의 딸 역시 시어머니가 깜빡하고 불씨를 끄는 바람에 부정을 타 불에 덴 것처럼 피부가 벗겨졌었다고 한다. 또한 삼칠일 동안은 닭도 잡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4. 아이키우기
1) 아이가 아플 때: 아이가 갑자기 몸이 좋지 않거나 경기(驚氣)를 일으키면 탯줄을 달여 먹인다. 탯줄에는 아이의 기운이 들어 있다고 여겼는데, 이것을 달여 나온 뽀얀 국물을 먹이면 아이가 금세 낫곤 하였다. 젖이 잘 나지 않거나 아이가 자꾸 보채고 울면 ‘부정쳤다’고 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부정물리기’를 한다. 부정물리기는 그릇에 썬 짚과 소금, 고춧가루를 넣어 삼신 앞에 갖다놓고 비는 것이다.
젖이 잘 나오지 않을 때에는 삼칠일 날 부엌에 기름을 두르면 좋다고 여기기도 했다. 이 외에 ‘객구물리기’를 하였다. 구미댁은 아이가 아플 때 바가지에 물과 밥을 넣고 “객구 받아서 썩 나가라”라는 말을 하며 칼을 던졌다. 이때 칼끝이 밖을 향할 때까지 반복한다. 이때 사용한 물건은 하루 동안 밖에 두는데,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울음을 뚝 그치곤 하였다.
2) 작명: 돌림자를 고려하여 부르기 좋게 짓는다. 이름에는 아이가 어떻게 자라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기도 한다.
3) 돌: 전통 사회에서 부유하지 않으면 돌에 잔치를 여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신 아들일 경우 약식으로 떡을 하는 경우는 더러 있었다. 운산댁은 큰아들만 돌잔치를 해 주었다. 이때 돌상에 미역국과 수수떡, 콩망생이 등을 올렸다. 돌상에 연필, 공책, 떡 등으로 올리고 돌잡이를 하기도 했다. 구미댁은 경제적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돌을 챙기지 못했다. 안산댁 역시 형편이 어려워 돌잔치는 하지 못하고 삼신상에 밥과 미역국, 물 한 그릇을 올려 두었다.
4) 아이팔기: 아이가 크게 아프면 무속인에게 물어 자연물에 아이를 팔기도 한다. 장소는 다양한데, 주로 산이나 바위, 나무 등이며 창고와 같은 뜻밖의 장소에 팔기도 한다. 범띠면 바위, 소띠면 풀밭이라는 식으로 아이의 띠에 따라 팔기도 한다. 아이를 팔 때에는 자연물 앞에 술과 떡, 대추, 밤, 아이 옷 등의 제물을 간단하게 차리고 무속인이 아이를 파는 의식을 행한다.
소산댁은 맏아들이 7살 때에 다리에 염증이 생겨 제비원보살을 통해 아들을 찔레나무 밑에 팔았다. 아이가 뱀띠이기 때문이다. 판 후에는 증상이 말끔히 치료되었다. 그런데 아들을 판 자리에 절이 생기고 아들의 몸이 다시 안 좋아지자, 먼저 판 것을 물리고 바위에 다시 팔았다. 구미댁은 아들이 자꾸 아프자 소띠라고 풀밭에 팔았다. 그러나 딸은 아파도 팔지 않았다. 그 까닭은 딸은 혼인하면 남편에게 가기 때문에 두 번 팔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