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25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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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泥川洞 |
영어의미역 | Icheon-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진영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유래]
이천동(泥川洞)은 마을에 진흙이 많고 진흙의 질이 좋아서 도기(陶器)를 만들었다고 하여 도천이라 하다가 이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 안동부 부내면(府內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우현동(斗牛峴洞), 북선면(北先面) 이하리의 일부를 통합하여 이천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이천동이 되었다.
[자연환경]
고개로 덕고개·옥달봉(玉達峰, 263m)이 있고, 골짜기로 난강골·범당골·왯골 등이 있다.
[현황]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459,487㎡이며, 2011년 6월 30일 현재 총 245가구에 569명(남자 295명, 여자 27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동인 안기동 관할로 지르내, 지비골, 두르골, 밋두리, 양이골, 용달골, 매락골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지르내는 왕달봉에서 발원한 하천이 남서쪽으로 흘러 마을 앞을 가로지르다가 꺾어서 북서쪽으로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천 위쪽을 웃지르내, 아래쪽을 아랫지르내라 한다.
비골은 조선시대에 출장 가는 관리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연미원(燕尾院)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설로는, 도대목(都大木)이 법룡사(法龍寺, 일명 한절)를 짓고 제자가 미륵당(彌勒堂)의 미륵을 덮는 난간 집을 짓기로 하였는데, 도대목이 법룡사를 다 짓고 왔더니 제자는 아직도 평고자(平高子)를 박고 있었다. 화가 난 도대목이 난간 집을 차 버리자 아래로 떨어지던 제자가 제비가 되어 날아가 제비원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때 난간 집 무너지는 소리가 30리 밖까지 울렸다고 한다.
중국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지비골 앞을 지날 때 말발굽이 떨어지지 않아 그 까닭을 알아보니 미륵불이 있어 그렇다 하므로 미륵불에 올라가 단칼에 목을 쳤는데, 그때 미륵불의 목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고 하며 그 핏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두르골[일명 두우티, 두우치, 두우현동(斗牛峴洞)]은 두우티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동권씨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밋두리[일명 미두루, 며두동(旀斗洞)]는 한티재 남쪽 밑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곳에서 콩과 팥을 많이 재배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이골[일명 양의곡(良義谷)]은 왕달봉 밑에 있는 마을로 지방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봉수를 통하여 임금에게 소상히 알리는 어진 백성이 살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골짜기 남쪽 양지쪽의 양지마을, 음지쪽의 음지마을 두 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용달골[일명 용당곡(龍堂谷)]은 범당골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이송천(二松川)에 최씨와 김씨들이 많이 살았는데 가축을 산짐승한테 많이 잃어 마주 보이는 산에 당(堂)을 지어서 제사를 지냈더니 그런 일이 없어졌다 한다. 이 일이 있은 이후부터 이곳을 용당골이라 하였다.
매락골[일명 매화곡(梅花谷)]은 송현동 몰갯골에서 북동쪽으로 조그마한 고개 넘어 있는 마을로 매화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매화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문화 유적으로 연미사, 보물 제115호인 안동 이천동 석불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9호인 안동 이천동 삼층석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