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8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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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遼山祠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죽하길 165-1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사현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진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중종반정 공신 이기의 사당.
[개설]
요산사(遼山祠)는 중종반정(中宗反正)의 공신 이기(李夔)[1493~1547]를 모신 사우(祠宇)이다. 요산사는 부조묘(不祧廟)[조선 시대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로 이기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요산군(遼山君)’이란 군호를 받았으며, 이로 인해 부조묘를 하사 받았다.
이기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사고(士高), 호는 정헌(靜軒)이다. 할아버지는 이혼(李渾), 아버지는 대호군 이수장(李壽長)이며, 어머니는 권관(權寬)의 딸이다.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문인이다. 1513년(중종 8) 진사가 되고, 1519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검열(檢閱), 대교(待敎) 등을 거쳐 1527년에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었다. 이후 성균사예(成均司藝),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 경차관(敬差官) 등을 거쳤다. 1545년 인종(仁宗)[재위 1544~1545]이 즉위한 뒤 절충대호군(折衝大護軍)을 거쳐 예빈시정(禮賓寺正)이 되고, 1546년 이조참의로서 진헌사(進獻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위치]
요산사는 청소면 진죽리 죽하마을에 있다. 장항선 청소역에서 서북쪽으로 약 1.3㎞, 청소초등학교에서 서북쪽으로 약 950m 떨어진 곳에 있다.
[변천]
요산사가 처음 건립된 시기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요산사에 남아 있는 2편의 중수기[1847년 정미(丁未), 1885년 을유(乙酉) 추정]를 토대로 볼 때, 16세기 중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847년(헌종 13)에 쓴 중수기는 이우명(李遇明)[1804~1863]이 썼다. 이우명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소(景昭), 호는 광헌(廣軒)으로 보령 청라에 살며 규남(圭南) 하백원(河百源)[1781~1844], 영의정을 지낸 남공철(南公轍)[1760~1840] 등과 교유한 유학자이다. 1885년(고종 22)의 중수기는 홍문관 교리(校理) 류석이 썼다.
[형태]
요산사는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건물에는 ‘요산군묘(遼山君廟)’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 앞에 솟을문과 담장이 둘러져 있다.
[현황]
2019년 5월 10일 보령시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되었다. 매년 수안 이씨 요산군파 후손들이 제향(祭享)을 지낸다. 요산군묘 인근에 재실(齋室)이 있었는데, 200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