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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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地 |
영어공식명칭 | Arrowhead Hill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9년 04월 01일 -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유해 발굴 작업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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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머리고지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 |
성격 | 고지 |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일원에 있는 6·25전쟁 당시 고지전이 벌어졌던 고지.
[개설]
화살머리고지는 백마고지[395m] 서쪽으로 3㎞ 지점에 위치한 해발 281m의 고지이다. 화살머리고지 이름은 고지 아래로 흐르는 역곡천이 곡류하면서 화살촉 모양의 하식애(河蝕崖)[하천 침식으로 만들어진 절벽]를 만들어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6·25전쟁 당시 화살머리고지에서는 1952년부터 1953년까지 치열한 전투가 두 차례 벌어졌다.
[관련 전투]
화살머리고지 역시 백마고지와 함께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중부전선의 요충지로서 6·25전쟁 기간 중에 두 차례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첫 번째 전투는 1952년 10월 6일부터 10일까지 유엔군의 일원으로 파병된 프랑스 대대가 중공군 제113사단과 맞서 싸운 전투이다. 프랑스 대대는 전사 47명, 부상 144명이라는 손실을 입으면서 화살머리고지를 사수하였다. 한때 방어선이 뚫리기도 하였지만 긴급 투입된 한국군과 미군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군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반격에 나섬으로써 5일간의 격전 끝에 화살머리고지를 탈환하였다. 화살머리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은 수천 명의 전사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이후에도 인해전술을 앞세운 파상 공세가 계속되었다.
두 번째 전투는 휴전을 며칠 앞둔 1953년 6월 중공군의 공세로 시작되었다. 철원평야에서 한국군 제2사단과 대치하던 중공군 제23군은 1953년 6월 12일에 제29사단 제205연대를 백마고지에 투입하여 공격을 실시하였으나, 한국군 제2사단 32연대의 철저한 방어로 실패하였다. 이후 중공군 73사단은 1차 6월 29일부터 30일, 2차 7월 6일부터 11일에 걸쳐 두 차례 공격하였다. 수적인 열세로 고전하던 한국군은 1953년 7월 9일 화살머리고지를 일시 중공군에 넘겨주었지만, 제2사단이 과감한 역습 작전을 통하여 7월 11일 고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중공군은 1,300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였다.
[현황]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2018년 9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9월 19일 ‘9월 평양공동선언’과 함께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발표하였다.
화살머리고지는 ‘9·19 남북 군사 합의’에 따라 남북이 시범적으로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을 합의한 장소로, 2018년 10월부터 유해 발굴에 필요한 출입로 및 수색로 확보를 위한 지뢰 제거 작업을 진행하고 도로를 개설하였다. 화살머리고지 일대에는 국군 전사자 200여 구와 미군과 프랑스군 전사자 300여 구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입도로를 개설하는 데 제거한 폭발물만 1,800발이 넘었고, 본격적인 유해 발굴이 이루어지기 전이지만 이미 국적도 신원도 알 수 없는 13개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총탄 자국이 선명한 철모와 수통들도 다수 발견되어 전투 당시의 처절하였던 상황을 말해 준다. 그중 육군 제2사단 소속 박재권 이등중사는 인식표가 발견되어 전사한 지 66년 만에 가족의 품에 안겼고, 2019년 3월 26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화살머리고지의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을 기점으로 2019년 6월부터는 ‘철원 DMZ 평화의 길’ 탐방 프로그램[총 길이 15㎞, 소요시간 약 3시간]이 시작되었다. 철원 DMZ 평화의 길의 탐방 코스는 백마고지 전적비~백마고지 조망대~공작새능선 조망대~화살머리고지 전망대~통문~비상주 감시초소[GP]~통문~백마고지 전적비로 이루어져 있다. 하루에 오전 10시, 오후 2시 각 20명씩 2회에 걸쳐 도합 40명으로 제한하여 탐방객을 받아 시범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