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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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若木縣 |
영어음역 | Yakmok-hyeon |
영어의미역 | Yakmok-hyeon Administrative Distric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칠곡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제도.
[개설]
신라시대에는 칠촌(七村) 혹은 대목현(大木縣)으로, 남북국시대에는 757년(신라 경덕왕 16) 계자현(谿子縣)으로, 고려시대에는 약목현(若木縣)으로 바뀌면서 존재하였으나, 1390년(고려 공양왕 2)에는 인동현(仁同縣)에 소속되었다. 1914년에는 칠곡군으로 편입되어 약목면이 되었다.
[관련기록]
『고려사(高麗史)』 권 제57 지 제11 지리 2 상주목 경산부에서는 “경산부(京山府)··· 소속된 군이 1개, 현이 14개 있다.··· 약목현(若木縣)은 원래 신라의 대목현(大木縣)인데 경덕왕은 계자(谿子)로 고쳐서 성산군(星山郡)의 관할 하에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에 와서 지금 명칭으로 고치고 본부에 소속시켰다. 인동현(仁同縣)은 현종 9년에 본부에 소속되었다. 공양왕 2년에 감무를 두어 약목현을 여기에 소속시켰다”라고 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세종 지리지 경상도 안동 대도호부 인동현에서는 “김부식(金富軾)의 『신라지리지(新羅地理誌)』에는 ‘성산군의 영현(領縣)이 넷인데, 수동현(壽同縣)은 본래 사동화현(斯同火縣)이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은 자세히 알 수 없다’고 하였으나, 지금 경토(境土)로써 이를 상고하건대, 수동을 인동(仁同)으로 고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고려 현종 무오년에 경산부(京山府)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공양왕 2년 경오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고, 약목현(若木縣)을 이에 붙였다. 속현(屬縣)이 하나이니 바로 약목현(若木縣)이다. 본디 대목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쳐서 계자(谿子)로 하여, 성산군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그대로 경산부에 붙였었다”라고 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세종 지리지 경상도 상주목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에서는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군위(軍威)에 이르기 57리, 서쪽으로 상주(尙州) 임내(任內)인 공성(功城)에 이르기 29리, 남쪽으로 인동(仁同) 임내인 약목현(若木縣)에 이르기 35리, 북쪽으로 상주 임내인 장천 부곡(長川部曲)에 이르기 25리이다.···금오산 석성(金烏山石城)은 부(府) 남쪽 45리 거리에 있다. 높고 험한데, 천연으로 된 험한 곳이 반이나 된다. 둘레가 1천 4백 40보인데, 안에 작은 못이 3, 시내가 1, 샘 4가 있고, 또 군창(軍倉)이 있는데, 개령(開寧)·약목(若木) 군창의 물건을 아울러 들여다 둔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세종 지리지 경상도 세종 26년 갑자(1444)에서는 통훈대부 윤연명 등이 낙동강 일대의 구역 설정을 다시 해줄 것을 상언하였다. 즉 “약목현(若木縣)은 낙동강의 서쪽에 있으므로 마땅히 우도에 속해야 할 것인데도, 도리어 좌도인 인동현에 속하여 있어, 강을 건너다니는 폐단이 적지 않으며, 긴급한 일이 이 때문에 기한을 어기어 모두 편달(鞭撻)을 받게 되니, 백성들의 어렵고 고통스러움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외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 제27 경상도(慶尙道) 인동현(仁同縣), 『대동지지(大東地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 28 경상도(慶尙道) 성주목(星州牧),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별집 권 제16 지리전고(地理典故),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 제17 여지고 5, 『송당선생문집(松堂先生文集)』 권 1 칠언절구(七言絶句) 제약목현객사(題若木縣客舍), 『점필재집(佔畢齋集)』 권 10 시(詩), 『허백당시집(虛白堂詩集)』 권 5 시(詩) 제약목현(題若木縣), 『용재선생집(容齋先生集)』 권 7 남유록(南遊錄) 경오년(庚午年) 약목현(若木縣), 『금계선생문집(錦溪先生文集)』 권 2 외집(外集) 시(詩), 『만랑집(漫浪集)』 권 3 오언율(五言律) 인동약목현차허백당운(仁同若木縣次虛白堂韻), 『극재선생문집(克齋先生文集)』 권 10 서(序) 약목현사창계약속서(若木縣社倉契約束序), 『동주선생문집(東州先生文集)』 권 8 지명(誌銘) 승정원좌부승지이공묘지명(承政院左副承旨李公墓誌銘) 병서(幷序), 『무릉잡고(武陵雜稿)』 권 1 원집(原集) 시(詩) 남정(南征) 병진(庚辰), 『금계선생문집(錦溪先生文集)』 권 2 외집(外集) 시(詩), 『동강선생문집(東岡先生文集)』 권 1 시(詩) 기행경자(紀行庚子), 『인재선생문집(訒齋先生文集)』 권 10 잡저(雜著) 논산성형세군현합병 병신이월재례천(論山城形勢郡縣合幷 丙申二月在醴泉), 『용주선생유고(龍洲先生遺稿)』 권 15 묘갈(墓碣) 좌부승지이공묘갈명(左副承旨李公墓碣銘) 병서(幷序), 『속동문선(續東文選)』 권 6 오언율시(五言律詩), 『점필재집(佔畢齋集)』 시집 제13권 시(詩), 『극재선생문집(克齋先生文集)』, 『완정선생문집(浣亭先生文集)』, 『규방가사-신변탄식류』 답향가 등에서 약목현에 대한 관련기록과 언급이 나온다.
[변천]
약목현은 940년( 태조 23) 계자현(谿子縣)에서 약목현(若木縣)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생겨났다.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현재의 성주]의 임내로 하였다가, 1390년(공양왕 2)에 인동현(仁同縣)에 감무(監務)를 둘 때 그 속현이 되었다. 1605년(선조 38)에는 인동현이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로 승격되면서, 약목현이 경산부에서 인동도호부의 속현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칙령(勅令) 제98호(5월 26일 공포)로 23부제 실시에 따라 칠곡도호부를 칠곡군으로, 인동도호부는 인동군으로 고쳐 대구부에 편입되었다.
칠곡군은 팔거(八筥)·퇴천(退川)·문주(文朱)·노곡(盧谷)·파미(巴彌)·동북(東北)·서북(西北)·하북(下北)·이언(伊彦)·상지(上枝)·도촌(道村) 등의 11개 면을 관장하였다. 인동군은 읍내(邑內)·동면(東面)·북면(北面)·문량(文良)·장곡(長谷)·석적(石赤)·기산(枝山)·약목(若木)·북삼(北三) 등의 9개 면을 관장하였고, 1911년 인동군청이 인동 읍내에서 약목으로 옮겼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산면(岐山面)과 북삼면(北三面)의 2개동을 합쳐 약목면이라 고치고 칠곡군에 병합시켰다.
[현황]
현재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북삼읍, 기산면 일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