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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221
한자 大木縣
영어음역 Daemok-hyeon
영어의미역 Daemok-hyeon Administrative District
이칭/별칭 칠촌(七村),곤산(昆山)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북삼읍|기산면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대목현 폐지
관할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관할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관할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성격 고지명

[정의]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 칠곡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제도.

[개설]

신라 시대에는 칠촌(七村) 혹은 대목현(大木縣), 남북국 시대에는 계자현(谿子縣), 고려 시대에는 약목현(若木縣)으로 바뀌면서 존재하였으나, 1390년(공양왕 2)에는 인동현(仁同縣)에 소속되었다. 1914년에 칠곡군으로 편입되어 약목면이 되었다. 목(木)은 ‘그루’, ‘그루터기’의 표기로 성(城)을 뜻하는 고어(古語)로서, 대목은 ‘큰 성’이라는 뜻을 의미한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잡지3 지리1 신라에서는 “성산군(星山郡)은 본시 일리군(一利郡)인데, 경덕왕(景德王)이 성산(星山)으로 개명하였다. 지금의 가리현(加利縣)이니 영현(領縣)이 넷이다.···… 계자현(谿子縣)은 본시 대목현(大木縣)으로, 경덕왕이 계자(谿子)로 개명하였는데 지금의 약목현(若木縣)이다”라고 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 권57 지11 지리2 상주목 경산부에서는 “경산부(京山府)는 원래 신라의 본피현(本彼縣)인데 경덕왕이 신안(新安)으로 고쳐서 성산군(星山郡)의 영현으로 만들었으며 후에 벽진군(碧珍郡)으로 고쳤다. 940년(태조 23)에 지금 명칭으로 고쳤고 981년(경종 6)에 낮추어서 광평군(廣平郡)으로 하였으며, 995년(성종 14)에 대주도단련사(垈州都團練使)라고 불렀다. 1012년(현종 3)에 도단련사를 폐지하였고 9년에 지경산부사(知京山府事)로 고쳤다.

1295년(충렬왕 21)에 흥안 도호부(興安都護府)로 승격시켰고 1308년에 다시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시켰으며, 1310년(충선왕 2)에 전국의 목이 없어짐에 따라 낮추어서 경산부로 하였다. 이 부에 가야산(伽倻山)이 있고 소속된 군이 1개, 현이 14개 있다.···… 약목현(若木縣)은 원래 신라의 대목현(大木縣)[칠촌(七村)이라고도 함]인데 경덕왕은 계자(谿子)로 고쳐서 성산군의 관할 하에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에 와서 지금 명칭으로 고치고 본부에 소속시켰다. 인동현(仁同縣)은 현종 9년에 본부에 소속되었다. 공양왕 2년에 감무(監務)를 두어 약목현을 여기에 소속시켰다”라고 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경상도 안동 대도호부 인동현에서는 “김부식(金富軾)의 『신라 지리지(新羅地理誌)』에는 ‘성산군의 영현(領縣)이 넷인데, 수동현(壽同縣)은 본래 사동화현(斯同火縣)이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은 자세히 알 수 없다’고 하였으나, 지금 경토(境土)로서 이를 상고하건대, 수동을 인동(仁同)으로 고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고려 현종 무오년에 경산부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공양왕 2년 경오에 비로소 감무를 두고, 약목현을 이에 붙였다. 속현(屬縣)이 하나이니 바로 약목현이다. 본디 대목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쳐서 계자(谿子)로 하여, 성산군의 영현을 삼았고,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그대로 경산부에 붙였었다”라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7 경상도(慶尙道)에서는 “인동현은 동쪽으로 성주(星州) 경계까지 43리, 남쪽으로 같은 주계(州界)까지 57리, 서쪽으로 개령현(開寧縣) 경계까지 33리, 북쪽으로 선산부(善山府) 경계까지 15리다. 서울과의 거리는 577리이다. 본래 신라의 사동화현이던 것을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현종(顯宗)이 경산부에 소속시켰고, 공양왕(恭讓王)이 감무를 두었으며 본조(本朝)에서 예에 의하여 현감으로 고쳤다. 약목현(若木縣) 현의 남쪽 30리에 있다. 본래 신라의 대목현(大木縣) 또는 칠촌(七村)이라고도 하며, 곤산(昆山)이란 이름도 있다. 경덕왕이 ‘계자(谿子)’로 고쳐 부르고 성산군의 영현을 삼았었다. 고려 때에 지금 이름으로 고쳐 경산부에 부쳤다가 뒤에 여기에 소속시켰다. 칠진(漆津) 서쪽 27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 권16 지리전고(地理典故) 주(州)와 군(郡)에서는 “신라 때의 사동화현인데, 인동으로 고쳤다. 선조 갑진년(甲辰年)에 부로 올렸다. 서울과의 거리는 600리이다. 수동(壽同)·옥산(玉山)이라고도 한다. 약목현은 속현이고, 신라 때의 대목현이니, 칠촌(七村) 또는 곤산(昆山)이라고도 한다. 계자현(谿子縣)이라고 고쳤다. 소목현(小木縣)이 있다. 견훤이 벽진(碧珍)을 침공할 때, 대목·소목 두 고을의 곡식을 베어 버렸다고 하였는데 지금 어디인지 상세하지 않다”고 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7 여지고 5에서는 “신라 계자현(谿子縣)은 본래 대목현(大木縣)으로, 일명 칠촌(七村) 또는 곤산(昆山)이라 하였다. 대목(大木)에 소속된 소목군(小木郡)이 있다. 고려 약목현(若木縣)은 경산(京山)에 편입시키고 후에 인동(仁同)에 편입시켰는데, 칠진(漆津) 서쪽 27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변천]

신라 시대에는 칠촌 또는 대목현으로 불렸다. 757년(경덕왕 16) 지방 행정 제도를 개편함에 따라 계자현(谿子縣)으로 바뀌면서 성산군(星山郡)[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940년(태조 23) 약목현으로 바뀌면서 경산군(京山郡)[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에 소속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인동현(仁同縣)에 소속되었다. 1895년(고종 32) 23부 체제로 개편될 때 인동 도호부약목현이 통합되어 인동군이 되었고, 1914년에 인동군은 칠곡군으로 편입되었다.

[현황]

대목현은 현재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북삼읍, 기산면 지역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8.06 [관련기록] [현황] 수정 <변경 전> 대목(大木)의 이웃에 또 소목군(小木郡)이 있다. /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약목면(若木面) 지역이다. <변경 후> 대목(大木)에 소속된 소목군(小木郡)이 있다. /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약목면(若木面)·북삼읍(北三邑)·기산면(岐山面)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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