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3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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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鶴下里窯址 |
영어의미역 | Kiln Site in Jungwon Hakha-ri |
이칭/별칭 | 해당사항 없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학하리 산87-2 일대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약수 |
성격 | 자기가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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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조선시대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학하리 산87-2번지 일원[고남 마을]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학하리에 있는 조선시대 자기가마터.
[개설]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학하리에서 자기가마터가 확인됨에 따라 ‘학하리 요지’라고 불린다. 학하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자기 수급에 관한 문헌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2003~2004년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의 시굴 및 2007년 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 자기가마와 이와 관련된 유구가 확인되고 자기편들이 출토됨으로써 조선시대 때 조업이 행해졌던 유적으로 추정된다.
[위치]
학하리 요지는 학하리 고남마을에 위치하는데, 정확한 소재지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학하리 산 87-2번지 일대로 학하리 고남마을의 석사지(石沙池)에서 남쪽으로 1㎞ 정도 산길을 따라 올라간 곳에 위치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2003~2004년 실시된 시굴조사 및 2007년 3월에서 8월까지 시행된 발굴조사가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이루어졌다. 발굴조사 결과 조선시대 가마유구 1기와 그와 관련된 회구부, 배수구, 작업장 등 6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가마는 대부분 훼손되어 극히 일부분의 소성실과 연소실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잔존상태로 보아 이 가마는 길이가 24m 정도이며, 출입구는 아궁이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에서 확인된다. 아궁이와 연소실은 단이 있는데, 그 단의 차이는 약 80㎝정도이다. 가마와 관련된 회구부는 유적의 자연 경사면을 따라 넓게 형성되어 있다.
유물은 가마와 구덩에서 소량 출토되었고, 회구부에서 대량 출토되었다. 유물은 모두 분청으로 기종은 접시와 대접이 주종을 이룬다. 그밖에 병을 비롯하여 합(盒)류의 자기와 갑발, 갓모, 도침 등 요도구(窯道具)도 출토되었다. 유물 가운데 명문이 새겨진 것이 있는데, 명문으로는 '□司膳□銘'을 비롯하여 ‘公’, ‘寧’, ‘金’, ‘順’, ‘定’, ‘大’ 외에 다수의 명문이 출토되었다. 이 명문의 성격으로는 관사명, 도공명, 그리고 공납용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유적이 위치한 학하리는 조선시대에 인동현(仁同縣) 동면에 속했으며, 인동현에 대해 기록된 문헌으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자기소(磁器所) 1개소와 도기소(陶器所) 1개소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기소는 인동현의 동쪽에 위치한다고 하였으므로 학하리 요지와 동쪽의 학상리 요지에서 출토되는 명문자기로 볼 때, 학하리 요지와 학상리 요지 일대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기록된 자기소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현황]
학하리 요지는 학하리 고남마을의 석사지에서 남쪽으로 1㎞ 정도 산길을 따라 들어간 곳에 위치한다. 이곳은 유학산에서 내려온 해발 230~280m의 완만한 구릉 지역으로 동쪽, 서쪽, 남쪽은 험준한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나 북쪽은 완만한 구릉과 연결되어 있고 좀 더 북쪽으로는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다. 학하리 요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司膳□銘' 표시된 분청자기편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 때 양질의 자기들을 생산한 유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학하리 요지는 조선시대 가마터로써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조선시대 요의 구조 및 편년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좋은 유적이다.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다양한 내용의 명문이 새겨진 분청자기편을 통해서 살펴볼 때 조선시대 때 조업이 왕성하게 행해졌던 유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유구는 바닥만 남아있는 등 잔존상태가 양호하지 않으나 명문 분청자기가 다수 출토된 중요한 분청자기 요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