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4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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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應箕 |
영어음역 | Gim Eunggi |
이칭/별칭 | 미수,병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상지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정의]
조선 전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백춘(伯春), 호는 병암(屛菴). 김알지(金閼智)의 30세손이며 문성왕(文聖王)의 8세손인 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하는 선산김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김지경(金之慶)이고 부인은 해평김씨이다.
[활동사항]
1477년(성종 8)에 식년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1482년에 수찬에 오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1492년 홍문관 직제학이 되었다. 좌·우 부승지를 거쳐 도승지가 되었고, 1496년(연산군 2)에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가 곧 돌아와 관상감제조·공안상정사제조를 역임하였다. 1498년에 호조참판, 이듬해 동지중추부사가 되어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공조참판이 되었다. 1500년에 한성판윤이 된 뒤 세자우빈객을 지내고, 갑자사화로 문외출송(門外黜送) 당하였다.
1506년 중종이 즉위한 후 이조판서가 된 뒤 병조·공조·예조판서를 거처, 1513년(중종 8)에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518년에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학식이 넓어 천문·지리·수학에까지 정통하였고, 언행이 법도에 맞아 사람들은 동방의 부자(夫子)라고 존경하였다. 성종의 신임이 두터워 10여 년 동안 강연(講筵)을 하였다. 시호는 문대(文戴)이며, 일찍이 칠곡군 지천면 상지[신 3리]에 살았다고 『칠곡지(漆谷誌)』에 기록되어 있으며, 『일선지(一善誌)』에 활동사항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있다.
[상훈과 추모]
선산(善山) 송산서원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