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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481
한자 金應箕
영어음역 Gim Eunggi
이칭/별칭 미수,병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상지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헌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3리[상지]
성별
생년 1455년연표보기
몰년 1519년연표보기
본관 선산
대표관직 우의정|좌의정|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정의]

조선 전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백춘(伯春), 호는 병암(屛菴). 김알지(金閼智)의 30세손이며 문성왕(文聖王)의 8세손인 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하는 선산김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김지경(金之慶)이고 부인은 해평김씨이다.

[활동사항]

1477년(성종 8)에 식년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1482년에 수찬에 오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1492년 홍문관 직제학이 되었다. 좌·우 부승지를 거쳐 도승지가 되었고, 1496년(연산군 2)에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가 곧 돌아와 관상감제조·공안상정사제조를 역임하였다. 1498년에 호조참판, 이듬해 동지중추부사가 되어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공조참판이 되었다. 1500년에 한성판윤이 된 뒤 세자우빈객을 지내고, 갑자사화로 문외출송(門外黜送) 당하였다.

1506년 중종이 즉위한 후 이조판서가 된 뒤 병조·공조·예조판서를 거처, 1513년(중종 8)에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518년에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학식이 넓어 천문·지리·수학에까지 정통하였고, 언행이 법도에 맞아 사람들은 동방의 부자(夫子)라고 존경하였다. 성종의 신임이 두터워 10여 년 동안 강연(講筵)을 하였다. 시호는 문대(文戴)이며, 일찍이 칠곡군 지천면 상지[신 3리]에 살았다고 『칠곡지(漆谷誌)』에 기록되어 있으며, 『일선지(一善誌)』에 활동사항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있다.

[상훈과 추모]

선산(善山) 송산서원에 제향(祭享)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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