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638 |
---|---|
한자 | 鄭錘 |
영어음역 | Jeong Su |
이칭/별칭 | 평보(平甫),양졸재(養拙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정의]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유생.
[가계]
정수(鄭錘)['錘'는 '추'로도 읽힌다)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평보(平甫), 호는 양졸재(養拙齋). 동래정씨는 육부촌장 지백호(知伯虎)의 후예로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나 세계(世系)가 확실하지 못하여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한다. 정절공파 18세 정여강(鄭汝康)의 아들로 동래정씨의 칠곡 입향조이다. 어머니는 서산유씨, 부인은 전주이씨이다.
[활동사항]
한강 정구(鄭逑)를 스승으로 섬겨 성리학(性理學)을 닦아 학문과 기예가 깊은 경지에 이르렀고 동문의 선비들이 서로 추중했다. 오양서원에 재향되었다. 1868년(고종 5)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지천면 연호리에 존경당(尊敬堂)을 세워 추모하고 있으며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사수[현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에 살았다.
[저술 및 작품]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실기(實紀)』가 있다.
[묘소]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오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생원 송이석(宋履錫)이 행장(行狀)을 지었고 참의(參議) 이상정(李象靖)이 비갈을 지었다. 오양서원(梧陽書院)에 제향(祭享)되었고 존경당(尊敬堂)을 세워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