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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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倉洞里 |
영어음역 | Changdong-ri |
이칭/별칭 | 창골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상기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고려 말부터 조창이 있어 창골 또는 창동이라 불렀다. 당시 조창의 이름은 경원창과 덕흥창이었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충주군 금천면 지역으로 창동리는 조선 초의 기록인 『고려사(高麗史)』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처음 언급된다. 『세종실록지리지』충청도 충주목조에 보면 “경원창(慶原倉)은 주의 서쪽 10리 연천(淵遷)에 있는데 경상도의 공부(貢賦)를 거두어 받는 곳이다. …… 덕흥창(德興倉)은 경원창 북쪽에 있다.”라는 글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경원창과 덕흥창이 현재의 창동리 지역에 있었다. 창동은 당시 금천면에 속해 있었다. 이들 경원창과 덕흥창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번 나온다.
기록에서 창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확인되는 것은 1898년에 나온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를 통해서다. 금천면은 창동, 누암, 광대, 인담, 탑평, 반천, 갈동, 상하걸, 칠곡의 9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창동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금면 8개 리 중 하나인 창동리가 되었다. 이때 생겨난 8개 리가 봉황리, 가흥리, 장천리, 하구암리, 용전리, 탑평리, 누암리, 창동리이다.
[자연환경]
창동리는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서쪽으로는 가파른 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강이 있어 농사짓기에는 불편한 곳이다. 창동리 남쪽으로는 대소원면 검단리가 있고 북쪽으로는 누암리가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대소원면 완오리가 있고 서쪽으로는 탄금대교를 건너 칠금동으로 연결된다. 최근에는 용두-금가간 우회도로가 지나가면서 창동리와 금가면 오석리를 연결하는 다리가 새로 가설되고 있다. 그리고 창동리에서 탄금대로 이어지는 다리도 새로 놓이고 있다.
[현황]
2008년 3월 1일 현재 면적은 3.92㎢이며, 총 128세대에 391명(남 201, 여 190)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갈마와 창동 두 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갈마는 상류인 달천변에 위치하고, 창동은 하류인 남한강변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창동리 지역에서 달천과 남한강이 합쳐진다. 갈마라는 마을 이름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강 건너에서 보면 말이 물을 마시고 있는 형국이라 해서 붙여졌다. 갈마 앞은 하천이 범람해 만든 충적분지가 발달해 있다. 그래서 갈마에서는 비닐하우스를 통한 채소 재배가 이루어진다.
창동은 창동리의 중심 마을로 옛날 금정리와 금대리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금정과 금대라는 지명은 우륵의 탄금대 연주와 관련이 있고, 창동과 창골은 조창과 관련이 있다. 창동리는 이처럼 수상 교통이 발달한 곳이어서 과거 사람과 화물의 왕래가 잦은 편이었다. 그래서 창동리에는 마애여래입상, 마애불 같은 문화유산이 분포되어 있다. 이곳을 통행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청명주가 만들어져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청명주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이다. 창암초등학교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교되었다. 국가지원지방도 82호선이 남한강변을 따라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