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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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津倉 |
영어음역 | Yangjinchang |
영어의미역 | Yangjinchang Warehous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욱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북문 안에 두었던 진휼미 보관 창고.
[제정경위 및 목적]
충주를 독진(獨鎭)으로 삼으려고 그 창고를 충주 양진 동편에 새롭게 만들고 양진창이라고 하였다.
[변천]
1669년(현종 10) 가흥에 의창(義倉)을 설치하고 충주의 환곡(還糓) 수천 석을 비축해두었다. 이후 1683년(숙종 9) 충주의 치소에서 6~7리 떨어져 있는 양진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1686년(숙종 12) 충주 양진 동편에 창고를 만들었다. 1690년(숙종 16) 읍내로 이건하였다.
[의의와 평가]
양진창은 충주뿐 아니라 영남과 영서 지역의 흉년에 대비하기 위한 곡물 창고였다. 양진창에 비축된 곡식은 이후 영남과 영서 등 주변 지역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이를 진휼하기 위한 재원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원래의 목적뿐 아니라, 지방관들이 진휼을 명목으로 부정 축재하는 수단으로 삼아 오히려 백성들에게 폐단을 끼치는 제도로 악용되기도 하였다.